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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41) “뽀로로 몰라요”.. 강원 산골 오지 아이들의 소원

강원도 인제 신월분교 선생님, 강원 산골 오지에 '동심'을 키운다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41) “뽀로로 몰라요”.. 강원 산골 오지 아이들의 소원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해 12월 21일 강원 인제 부평초등학교 신월분교에서 이한민 교사가 1·3학년 합동 미술시간을 이용,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 인제(강원)=윤경현 기자】 #. 강원 인제 부평초등학교(교장 오일주) 신월분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바다를 보고 싶었다. 제자들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선생님이 나섰다.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한국해양재단의 지원을 받아 경기 화성 제부도 갯벌체험, 강원 강릉 해양생물연구교육센터 방문, 강원 고성 봉포해수욕장 청소 봉사 등 4개월에 걸친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줬다. 하지만 10장짜리 신청서부터 45장짜리 결과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은 모두 교사 몫이었다. 그 교사는 아이들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휴일은 물론 저녁시간을 모두 할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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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겨울방학이 코앞이던 지난해 12월 21일 아침 인제의 바깥 온도는 영하 16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에 눈발까지 날려 눈물이 찔끔찔끔 날 정도였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는 족히 넘을 것 같다"고 하자 신남버스터미널에 있던 주민이 "강원도잖아요. 이건 추운 것도 아니에요"라는 말로 기자의 투덜거림을 잠재웠다.

본교가 있는 신남리와는 승용차로 불과 20분 거리지만 오지는 오지였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하나뿐이어서 들어간 길로 다시 나와야 한다. 버스는 아침저녁에 한 차례씩 하루 두 번이 전부다. 그나마도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등하교를 위한 것이란다.

■24시간 학교·학생과 함께 살아

수소문 끝에 겨우 택시를 구해 양구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갔다. 10여분을 달려 '달뜨는 마을'이라고 쓰인 출입문을 지나니 눈 덮인 꼬부랑길이 나타났다. 산을 넘어 머릿속 나침반이 제자리를 찾을 때야 소양호를 끼고 있는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초승달을 닮아 '새로운 달(신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택시기사의 설명이었다.

신월분교는 교실 2개에 교무실, 과학실, 도서실, 특별실이 하나씩이다. 한 학년에 10개가 넘는 학급이 있는 도시의 학교와 달리 아기자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복도에는 아이들 서예작품과 목공예작품, 과학활동 결과물 등이 전시돼 있다. 교무실 문에 붙은 '유실 지뢰 홍보교육' 안내문이 학교의 위치를 재차 확인시켜줬다.

학생은 1학년 3명(김경우·김지은·박병준), 3학년 2명(김경민·박병욱) 등 5명이 전부다. 전교생의 실내화를 다 합쳐도 복도에 마련된 신발장 한쪽이면 충분했다. 이쯤에서 눈치가 빠른 누군가는 아이들 이름이 비슷하다는 점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경우와 경민이, 병준이와 병욱이는 각각 형제고 지은이는 경우·경민이와 같은 집에 사는 사촌이다. 51가구, 120여명의 주민이 살지만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보내는 집은 달랑 두 집인 셈이다.

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분교장인 이한민 교사(42)와 1학년을 전담하고 있는 변윤혜 복식수업 보조강사(41·여)뿐이다. 만 2년 가까이 신월분교에서 근무 중인 이 교사는 교무실에서 이미 아이들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학교 바로 뒤편의 관사에 거주하는 터라 학교 일과 개인생활의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한 덕분(?)이다. 이 교사는 "24시간 학교, 학생들과 산다"고 표현했다.

부부교사인 이 교사는 2013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지도하며 관사에서 살았다. 지난해 초 졸업과 전학으로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교사 정원이 축소돼 아내는 두 딸을 데리고 인제 읍내에 있는 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맹추위에도 신월분교는 도시 학교보다 20∼30분 일찍 아침을 맞는다. 농사일로 하루 해가 짧은 시골의 일상이 그만큼 이른 시간에 열리기 때문이다. 1교시 수업은 공식적으로 오전 9시10분에 시작하는데 오전 8시20분을 넘어가자 아이들이 하나둘 교실로 들어왔다.

이 교사는 '쿵, 쿵' 복도를 걸어오는 발소리만 듣고도 누가 왔는지 기가 막히게 맞혔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오전 7시40분이면 학교에 나왔다"며 "날씨가 많이 추워지면서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학부모들에게 '등교시간을 늦춰달라'는 알림장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겨울이라 그렇지 여름에는 오전 7시가 되면 학교에서 아이들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41) “뽀로로 몰라요”.. 강원 산골 오지 아이들의 소원
강원 인제 부평초등학교 신월분교 이한민 교사가 수업이 끝난 후 학교 앞 언덕에서 아이들과 함께 눈썰매를 타고 있다.


■교과서 외에 '산교육' 병행

아이들의 하루는 생활체육의 하나인 국학기공으로 시작됐다. 기자의 눈에는 공원에서 어르신들이 하는 기체조와 비슷해 보였다. 이 교사는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의 하나로 배웠는데 지난해 전국대회에서 입상한 이후 각종 행사에 초청받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30분간의 독서활동 시간이 이어졌다. 특히 1학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이 교사는 "이곳 아이들은 유치원은 언감생심이고, 초등학교가 첫 교육기관"이라며 "먹고사느라 바빠 부모가 아이들 교육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들이 입학을 했는데 한글은 물론 '뽀통령'으로 불리는 뽀로로를 아는 아이도 전무했다"며 "기초교육을 집중적으로 한 덕에 지금은 본교 아이들에게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형 TV에 컴퓨터 등 교실 안은 여느 도시의 학교와 다를 게 없다. 다른 점은 개별 책상이 아니라 교실 가운데 놓인 커다란 책상에서 서로 얼굴을 맞댄 채 수업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의 거리는 1m에 불과하다. 이 교사는 "수업 도중에 친구와 특정 주제로 대화하기, 친구의 의견을 듣고 얘기하기 등이 나오는데 학생 수가 너무 적으니까 다양성 측면에서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3학년의 2교시 수학수업을 참관했다. 이날 수업은 자료를 정리하는 규칙에 대해 배우는 것이었다. 이 교사는 경민이와 병욱이가 수업내용을 모두 이해할 때까지 묻고 설명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는 영상을 잘 보여주지 않았다. 책과 수업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교사들은 교과서로 수업을 하도록 충분히 교육을 받았다"면서 "어려워서 못하는 게 아니라 귀찮아서 안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3교시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1학년 교실에서 생상의 '동물사육제'가 들려 안을 들여다봤다. 특정 동물을 테마로 한 음악이 흐르자 경우가 바닥에 엎드려 흉내를 내고 다른 아이들이 이를 맞히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바로 전 수업시간에 했던 내용들이다. 자연스럽게 수업이 이어지는 셈이었다. 더구나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도 따로 울리지 않는다.

"마을 들어오는 길 중간에 약수터가 있습니다. 한때 외지인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장소였어요. 아이들과 함께 마대 2개 분량의 쓰레기를 줍고 직접 만든 포스터를 붙여놨더니 지금은 쓰레기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바로 '산교육'이지요.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경쟁에서 살아갈 방법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희망을 알려주는 곳이 학교입니다."

앞서 2013년 12월에는 학부모, 마을주민, 교육청 관계자 등을 초청해 학예회를 열었다. 연극과 합창, 치어댄스, 기악합주 등의 공연과 함께 아이들의 미숙작품을 전시해 큰 박수를 받았다. '비록 시골학교, 그것도 분교에 다니지만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이 교사의 따뜻한 배려였다.

오후에는 1·3학년이 한데 모인 가운데 미술수업이 진행됐다. 이날의 과제는 부모님께 드릴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2시간 정도로 예상됐던 수업은 1시간 만에 마무리됐다. 그리고 예정에 없던 체육시간이 선포됐다. 이 교사와 학생들은 변 강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눈썰매를 들고 건너편 언덕으로 발길을 옮겼다.

■학교 살림살이도 책임

이 교사는 어릴 적부터 분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게 꿈이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난 2010년 춘천에서 부평초등학교로 전근을 왔고 3년을 기다린 후에야 신월분교를 맡을 수 있었다. 이 교사는 "아버지께서 전교생이 20여명인 삼척의 벽지 학교에서 근무할 때 주말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다른 교사들은 방학이면 연수도 가고 하지만 이 교사는 방학에도 쉬지를 못한다. 아이들이 방학 기간에도 계속 학교에 나오기 때문이다. 분교의 유일한 교사라 학교를 비울 수가 없다. 실제로 그의 1월 달력에는 미술, 과학놀이, 서당 등으로 일정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 교사는 "워낙 외딴곳이라 아이들이 집에서는 할 게 없어 그렇다"며 "방학에도 시간이 나면 여름에는 아이들과 수영장이나 계곡에서 놀고, 겨울에는 박물관이나 빙어축제 등에 데려가는 등 외부활동을 많이 하려고 애쓴다"고 설명했다.

신월분교 아이들에게 이 교사는 때때로 '아빠'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의 돈을 들여서 자신의 자동차로 데리고 다니며 아이들의 견문을 넓혀주려 애쓴다. 그래서 지난해 자동차도 7인승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바꿨다. 그는 "수업을 하다 보면 교과서에 나오는 것 가운데 경험해보지 못한 게 너무 많아 아이들과의 사이에 벽이 생기곤 한다"며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 다 알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이외에 학교 살림살이도 책임져야 한다. 연간 예산이 4200만원가량인데 전기·인터넷·전화 요금으로만 1000만원 가까이 지출된다. 최대한 줄이고 줄여서 2013년 겨울에는 500만원으로 도서관을 만들었다.
신월분교에는 1시간에 2만5000원씩, 하루 2시간의 방과후학교를 위한 예산이 책정돼 있다. 문제는 공지를 내도 아무도 오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 교사는 "다양하게 방과후학교를 짜고 싶지만 결국에는 내부강사를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lue73@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