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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청소부'를 아시나요...해양환경관리공단 청항선

'바다청소부'를 아시나요...해양환경관리공단 청항선
해양환경관리공단 부산지사의 청방선 '파란호' 승무원들이 북항대교 아래 부두에서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사진=윤경현 기자

【 부산=윤경현 기자】육지에 환경미화원이 있다면 바다에는 이들이 있다. '바다의 청소부'로 불리는 해양환경관리공단의 항만청소선(청항선)이 그 주인공이다. 환경미화원들이 주로 도시에서 일하는 것처럼 청항선도 배들이 몰리는 항구를 중심으로 쓰레기를 치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바다청소에는 한꺼번에 여럿의 손이 필요하고, 들어가는 비용도 훨씬 많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청소장비를 제대로 갖춘 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달 28일 해양환경관리공단 부산지사의 청방선 '파란호'에 동승해 바다청소부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파란호는 지난 2006년 건조된 70t급의 청소·방제 겸용 선박으로, 건조비용은 약 70억원이 투입됐다.

■'깨끗한' 부산항 만드는 바다청소부

오전 9시30분께 관공선들이 모여 있는 부산항 제5부두에서 파란호를 처음 만났다. 다행스럽게도 날씨가 좋았다. 이오재 선장(51)과 김진수 기관장(57)이 기자의 승선을 반갑게 맞아줬다. 이들은 해양환경관리공단의 전신인 한국해양오염방재조합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호흡을 맞춰온 베테랑들이다.

이 선장은 "환경미화원들이 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하지만 바다에서는 우리가 그들과 같은 역할을 한다"며 "바다 환경을 오염시키고 선박 항해에 위험요소가 되는 부유물 등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잠시 후 신창섭 항해사(31)와 바로 옆에 정박한 청방선 '부산933호'의 박범석 선장(44)이 배에 올랐다. 신 항해사는 파란호와 이제 겨우 한 달을 보냈고, 박 선장은 동료들을 돕고 일도 배울겸 해서 함께 승선했단다.

파란호가 청소를 맡은 구역은 북항을 비롯해 다대포항, 감천항, 용호만, 해운대 등이다. 북항과 해운대 쪽으로 한 바퀴 돌면 2시간, 다대포항과 감천항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3시간 가까이 걸린다. 이 선장은 "기장에서 가덕까지 사실상 부산항 전체가 관할구역이라고 보면 된다"며 "성수기(?)인 여름에는 하루에도 서너차례씩, 비수기인 겨울에는 한 달에 2∼3회 정도 순찰을 겸해서 청소를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바다 위의 쓰레기지만 대부분이 육지에서 사람들이 버린 것으로, 빗물에 쓸리거나 바람을 타고 바다로 유입된다. 이 선장은 "생활쓰레기가 80%를 차지하고 나머지 20%가 낙엽이나 지나는 선박에서 배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발 20분 만에 북항대교 아래에 다다랐다. 부두 한 모퉁이에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김 기관장과 신 항사 등이 긴 막대를 들고 쓰레기를 선수 아래로 몰았다. 스크루가 돌아가면서 컨베이어가 쓰레기를 배 위로 실어날랐다. 컵라면 용기부터 스티로폼, 각목, 밧줄, 생수병, 부탄가스, 콘돔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었다.

불과 20여분 건져냈을 뿐인데 뱃머리는 온통 쓰레기로 가득찼다. 이 선장이 '이 정도는 아무 것만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간혹 돼지, 개, 고양이 등의 사체가 떠다니다 올라오면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여름에 특히 심하다"며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뱀도 떠내려오는데 살아서 올라오면 섬뜩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파란호가 동명부두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50분께였다. 여름철에 해당하는 4∼11월에는 가장 쓰레기가 많이 모이는 곳이지만 이날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김 기관장이 "민원이 자주 들어오는 곳이라 나오면 꼭 들른다"고 설명했다.

여기저기를 돌면서 쓰레기를 수거하던 파란호가 자성대부두로 방향을 돌렸다. '오늘의 쓰레기 수거작업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크레인이 달린 공단 소속의 집하차량이 부두에서 이미 대기 중이었다. 쓰레기를 차에 실어주는 것까지가 파란호의 임무다. 신 항해사는 "외부에서 볼 때는 편하게 보였으나 실제로는 하는 일이 많다"며 "무엇보다 배에서 일하다 크레인 차량을 운전하는 등 이 업무, 저 업무 가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점이 힘들다"고 말했다.

이날 파란호가 바다에서 거둬들인 쓰레기는 평소와 비슷한 약 3t이었다. 이 선장은 "겨울에는 비(또는 는)가 적게 와서 쓰레기도 적다"며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봄비가 내리면 하수구에 있던 낙엽 등이 한꺼번에 쓸려 내려와 바다를 가득 메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수거하는 쓰레기의 양은 계절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김 기관장은 "여름 장마철에는 한 번에 3t씩 하루에 10t가량을 수거하고, 태풍이라도 지나간 후에는 30t까지 늘어난다"며 "겨울에는 하루 2∼3t으로 적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쓰레기가 많을 때는 선장도 나와서 거들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파란호가 지난 해 관할구역에서 건져낸 바다 쓰레기는 부피톤수로 1050t, 실제 무게는 465t에 이른다.

■폐목재, 죽은 고래도 수거목록에

지난 해 8월에는 태풍 '나크리'로 부산 앞바다에 밀려온 대량의 폐목재를 수거하는데 큰 힘을 보탰다. 이 선장은 "영도 앞바다에서 좌초된 파마나 선적 벌크선에서 흘러나온 합판 등이 해운대해수욕장부터 다대포까지 온통 뒤덮었다"며 "파란호가 수거한 양만 200t을 훌쩍 넘었다"고 설명했다.

곁에 있던 김 기관장이 "그중 큰 것은 가로 4m, 세로 8m나 돼 컨베이어로 작업이 불가능했다"면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배에 끌어올렸는데 물을 먹은 탓에 합판 하나의 무게가 30∼40㎏에 달해 엄청 애를 먹었다"고 부연했다.

바다청소를 하다보니 별의별 사건을 다 겪는다. 이 선장이 3∼4년 전의 얘기를 들려줬다.

"바다에서 작은 가방을 발견했어요. 현금은 없고 각종 카드에 여권이 들어있더라구요. 주인에게 연락하니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만나서 돌려주는데 외모 탓인지 소매치기범으로 오해를 하더군요. 지갑을 얻게 된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들은 다음에야 사과를 하고서는 인사도 없이 돌아서더군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습니다."

김 기관장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는 "지난 해 감천항에서 소매치기들이 바다에 버린 지갑을 건져 주인(20대 여성)에게 돌려줬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며 "그래도 좋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에 기분은 좋더라"고 했다.

김 기관장의 경험담이 이어졌다. 5년 전 마산(현 창원)에서 근무할 때 50대 남성의 시체를 건져 올린 적도 있고, 3년 전에는 송도 앞바다에서 죽은 상어고래를 수거했단다. 그는 "상어고래가 죽어 해수욕장까지 떠밀려왔는데 이미 부패가 진행돼 방복면을 썼는 데도 냄새가 지독해서 혼났다"며 "길이 6m에 무게가 250㎏에 달해 배에 싣지 못하고 줄로 묶어서 견인해왔다"고 회상했다.

■방제가 주 업무…24시간 대기

파란호는 사실 청소보다는 방제가 핵심업무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전국 어디든 달려간다. 지난 2007년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충남 태안), 2011년 경신호 잔존유 제거작업(경북 포항)에 투입됐다.

이 선장은 "방제작업도 바다의 오염을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청소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바다청소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해도 되는 데다 4명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하지만 방제작업은 촌각을 다투는 일이고, 특히 사고 발생 첫날은 24시간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인원을 보충받는다"고 설명했다. 김 기관장이 "해양오염 사고는 기상이 나쁠 때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청소작업보다 훨씬 힘들다"고 거들었다.

지난 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에는 파란호도 전남 진도 앞바다로 달려갔다. 한 달가량 머물면서 방제작업과 함께 유류품 수거 등을 도왔다. 김 기관장은 "방제작업 도중 여학생이 신던 운동화를 건졌는데 왈칵하고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했다. 이 선장은 "너무 가슴 아픈 모습을 보면서 힘이 들어도 힘들다는 얘기조차 할 수 없었다"며 "내 새끼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라 특히 눈물이 많이 났다"고 덧붙였다.

파란호 뒤편에는 유출된 기름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면에 설치하는 오일펜스가 2개나 실려있다. 그중에서도 길이 300m짜리 외해용 오일펜스(C형)는 가격이 무려 5억원에 이른다.

쓰레기를 건져올리는 컨베이어는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특수메쉬를 씌워 기름제거에 유용하게 활용한다. 다른 장비에 비해 효율이 월등하단다. 김 기관장은 "지난해 말 부산 태종대 앞바다에서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현장에서 무려 11t의 기름을 수거했다"고 자랑했다. 그는 이어 "방제장비는 유지·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며 "언제 쓸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해 파란호는 147회 출동했으며, 세월호 사고 지원까지 포함할 경우 모두 170회에 이른다. 이동거리는 약 4200㎞로, 서울∼부산을 다섯차례나 왕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선장은 "경유 사용량이 3만8000L에 달했으니 L당 1500원씩 쳐서 기름값으로만 5700만원을 쓴 셈"이라며 웃었다.

blue73@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