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람들 앞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단어는 무엇일까. 아마 유대인 대학살을 의미하는 홀로코스트나 아우슈비츠가 아닐까 싶다. 최근 베텔스만 재단의 여론조사 결과 독일인 81%가 홀로코스트를 잊고 싶다고 응답했다. 독일 국민의 목소리는 나치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그 종지부를 찍자는 것인가. 악몽을 잊고 싶어하는 국민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려는 듯 메르켈 총리는 기회가 닿는 대로 독일 국민 모두가 영원히 홀로코스트를 잊어서는 안 되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며 과거사에 대한 직시와 반성을 촉구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된 지 1월 27일로 70주년이 됐다. 출입문 위에 '노동이 자유롭게 한다(Arbeit macht frei)'는 구호가 걸려 있는 이 수용소에서 100만여명의 유대인이 학살됐다는 것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70주년을 맞아 마치 흑백필름 영사기를 돌리듯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생존자의 증언은 충격 그 자체다.
"샤워하러 간다"면서 가스실로 끌려간 엄마의 죽음 앞에서, 엄마를 가스실로 보낸 감시원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푸른 다뉴브강의 왈츠'에 맞춰 춤을 춰야 했던 어린 발레리나의 참혹한 심정을 어떻게 필설로 표현할 수 있을까. 수용소에 같이 들어온 여동생의 꽃신을 신고 있는 감시원을 보면서 오빠의 머릿속에 가득찬 궁금증과 불안의 무게를 어떻게 잴 수 있겠나.
인류문명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나치 만행의 핵심 전범자에 대해 뉘른베르크 재판은 '다양한 종교와 문화, 인종이 공존하는 지구촌 세계를 부정하였다' 해서 사형을 선고했다. 1961년에는 학살자 아이히만의 재판이 예루살렘에서 열렸다. 자신의 죄는 국가와 상사에게 충성을 다하는 책임감 강한 보통 공무원이 공무원선서에 복종한 것뿐이라는 아이히만에 대해 판사는 피고인이 수용소로 보낸 수많은 기차는 의도적 학살 참여를 증명해 주는 것이고 이는 사람들을 가스실로 던지는 것과 진배없다고 판결했다. 당시 미국 잡지 '뉴요커'의 특파원으로 이 재판에 참석한 한나 아렌트는 어느 누구라도 아이히만이 처했던 그런 상황에서는 그처럼 행동할 개연성이 있고 사유능력이 없는 꼭두각시 관료가 저지른 평범한 악이라는 이른바 '악의 평범성'을 제기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승전국의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1950년대 말까지 나치 범죄자의 색출과 조사에 대해 독일 스스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히만 재판을 계기로 독일 내에서 자발적인 나치즘 청산 작업이 본격화됐고 홀로코스트에 대해 독일인 스스로 반성하고 처벌하는 사법절차가 시작됐다.
여기에는 프리츠 바우어 검사가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는 거의 혼자서 나치 전범을 프랑크푸르트 법정으로 끌고갔다. 1963년부터 2년여 동안 1300명 이상이 증언대에 선 매머드 재판에서 검찰은 수용소에서 가스 살포와 화장이 일상화되다 보니 피고인들은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학살에 참여했지만 사무적이고 관료적인 무자비함 속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비난했고, 판사는 지위가 낮은 나치 친위대원들도 계획을 수립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유대인 말살 실행에 꼭 필요했던 사람들이라고 유죄를 인정했다.
그 후에도 전범자 처벌 범위를 넓히고 더 강력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최근까지 과거사 청산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도 수용소 경비원, 감시원으로 근무했던 93세의 노인들을 단죄하려 한다.
수용소에서 벌어진 대량학살 행위를 지켜본 것도 살인 방조에 해당하고 공소시효도 없이 끝까지 추적한다는 것이 독일 사법부의 입장이다.
이러한 독일의 참회의 실천이 통일과 경제 최강국에 이른 밑거름이 됐다. 올 3월에 일본을 방문하는 메르켈 총리는 아베 총리에게 이러한 역사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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