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하순 박원순 서울시장은 7박10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이 기간 뉴욕의 케네디공항에서는 실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 같은 무례는 공항 검열대의 한 무뢰한에서 비롯됐다. 비행기에서 내린 박 시장 일행은 입국심사장에 나란히 섰다. 입국심사원인 그 무뢰한은 박 시장을 한참 동안이나 자기 앞에 세워놓고 딴전을 부렸다. 그 시간이 10분을 족히 넘겼다. 그때 박 시장 꼴이라니…, 서울의 한 시민으로서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입국심사를 위해 여권을 제출한 박 시장은 한동안 그저 물끄러미 서 있었고, 그 무뢰한은 아무 말 없이 박 시장을 아래위로 훑어보기도 하고, 여권과 박 시장을 한참 동안 대조해 보는 듯하기도 하고…, 가관이었다.
영어를 못하는 박 시장도 아닌데, 왜 그리 긴 시간을 지체하며 아무 말 없이 '군기'만 잡고 앉아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박 시장의 미국 입국이 어디 수상쩍다 싶었으면 인터뷰를 통해 진위를 알아보면 될 일이지….
혹자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고,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공권력이 살아있는 나라기 때문에 필자의 이 같은 지적을 그저 촌스러운 넋두리로 치부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오만에서 오는 무례한 짓거리임에 틀림없다.
박 시장은 여야를 떠나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데 이어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서울 시민의 압도적 지지 속에 연임에 성공, 인구 1000만 수도 서울의 지도자가 됐다. 서울 시민의 신임을 한껏 받았다는 말이다. 이 같은 이유 말고라도 한·미 간은 우방이다. 이 때문에 박 시장에 대한 뉴욕 공항에서의 간단한 의전은 한국 수도 서울의 최고 지도자로서 마땅히 받을 만하다. 그것이 양국 간의 도리요, 서울과 뉴욕 양 도시 간의 예의였을 것이다.
박 시장도 참다 못해 화가 치밀었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상기됐다. 그러나 그는 글로벌 시티 서울 시장답게 이내 맘속으로 삭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서울의 수준 높은 참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렇더라도 거대도시 서울이 미국의 일개 공항 직원한테 무시당하는 꼴을 본 순간 서울 시민의 자존심이 짓밟힌 듯했다. 9·11테러 이후 안전과 보안 등이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야 하기에는 어처구니없는 미국이었다.
입국장을 통과한 뒤 측근에게 자초지종을 알아봤다. 박 시장은 이번 방미 때 뉴욕 한국 총영사관 측에 그저 검소하게 다녀오겠다는 뜻을 전한 채, 구차한 의전 따위는 사양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인구 1000만 서울의 시장 의전에 대한 뉴욕 외교부의 엉터리 의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뉴욕시장이 방한을 했더라도 인천공항에서 이런 작태가 벌어졌을까.
외교는 상호주의요, 상대적이다. 1000만 시민을 대표하는 그가 서울과 미국 간 외교를 위해 방미했다면 뉴욕시장은 고사하고 직원이라도 나와 마중을 했어야 할 일이다.
갑자기 미 사대주의(事大主義)에 빠진 어처구니없는 '어글리 코리언'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자들은 말할 때 서두를 꼭 이렇게 시작한다. "미쿡은…, 미쿡에 가면…, 미쿡에선…" 하며 미국에 도취된 채 한국을 은근히 비하하기 일쑤다.
미국이란 나라가 고작 이렇단 말인가. 미국에 가서 '미제 따귀'를 맞으면 아프지도 않고, 자존심도 상하지 않고, 억울하지도 않단 말인가.
이튿날 뉴욕 시내를 거닐었다. 거리에 널브러진 쓰레기 하곤…, 또 시내를 활보하는 차도 사람도 왜 그렇게 무질서한지, 무법천지가 따로 없는 동네였다. 이런 저급스러운 동네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글로벌 시티라니…. 미국은 하루빨리 이 무뢰한에 대해 서울 시민에게 사과하기 바란다.
dikim@fnnews.com 김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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