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 기업인' 하면 사람들은 누구를 꼽을까. 필시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나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현존하는 기업인으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자주 거론되고 있지만 두 '거목'의 존재감에는 미치지 못한다. 인지도 면에서는 정 회장이 이 회장보다 다소 앞서는 경향이 있다. 1000만 관객 영화 '국제시장'에는 젊은 시절 정 회장의 일화가 등장한다. 윤제균 감독은 당초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이 회장을 검토했다. 그런데 이 회장이 타계한 지 너무 오래돼서인지 20~30대 젊은층이 의외로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실향민인 정 회장을 낙점했다고 한다.
외국의 평가는 좀 다르다. 대체로 이 회장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비스니스 선구자' 50인의 리스트를 발표했다. 여기에 이 회장이 당당히 올라있다. 놀랍게도 자동차왕 헨리 포드, 제너럴일렉트릭(GE) 창업자인 토머스 에디슨, 스탠더드 오일 설립자인 존 록펠러, 애플의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등 역대 최고 비즈니스 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아쉽게도 정 회장은 빠져있다. 한국인으로는 이 회장이 유일하게 선정됐다.
FT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환경을 변화시켜 역사에 남을 만한 성과를 창출한 인물'을 선정기준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에 대해서는 "가전과 조선,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면서 이들 분야 세계 최대 기업을 일궜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이 73세 나이에 극히 위험하다는 반도체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로 결단한 것을 세계는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50인 선구자에 일본은 모리타 아키오 소니 설립자와 도요타 에이지 전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이름을 올렸다. 일본 역시 현존하는 기업인은 없다. 중국은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과 런정페이 화웨이 설립자가 선정됐다. 이 밖에 아시아 인물로는 그라민은행 설립자인 무함마드 유누스(방글라데시), 라탄 타타 타타그룹 명예회장(인도) 등이 있다.
요즘 한국 기업들이 잔뜩 움츠러들어 있다고 한다.
위험을 감수한 투자도, 새로운 사업에 대한 도전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가정신의 실종이다. 타계한 지 28년 된 이병철 회장의 뒤를 잇는 '비즈니스 선구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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