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배려해야" vs. "부작용 불보듯"
#. 김모씨(46)는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을 하면서 불편한 장면과 마주하는 일이 최근 부쩍 늘었다. 장애인과 임산부, 노인 등을 위해 지하철 한 켠에 마련된 '교통약자석(노약자석)'에 자식뻘 되는 젊은 사람들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이 불편하게 서있는 것을 보고도 버젓이 앉아 웃고 떠드는 모습을 접하는 일이 많아서다. 김씨는 "70~80대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입장에서 마치 내 자식들이 노약자석에 뻔뻔하게 앉아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 노약자석을 둘러싼 이용객들 간 갈등이 끊이질 않고 있다. 과거에는 젊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으면 양심상 자는 척이라도 했지만 최근에는 잡담이나 개인 업무 등을 하면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게 이용객들의 전언이다.
이 때문에 저출산 고령화시대를 맞아 법적으로 좌석 이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풍양속에 대한 법적 규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파이낸셜뉴스는 이번 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제를 '노약자석 법제화 필요한가'로 정하고 실태와 함께 시민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사라지는 예의범절…강제화를
2일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지하철 교통약자 관련 민원은 지난 2012년 22건에서 지난해 40건으로 2년 새 2배 가량 증가했다.
임신부 배려석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부족해 자리양보가 잘 안된다는 민원이 주를 이뤘다.
노약자석의 법제화에 찬성하는 시민들은 '어른이나 사회적 약자를 공경해야 한다'는 윤리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어 관련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얼마 전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지하철 노약자석 자리를 차지해 버리는 바람에 1시간 동안 서서 집에 왔다는 박모씨(75)는 "술에 취하거나 잠이 든 상황도 아니었는데도 흰머리가 희끗한 나를 보고도 본채 만채 친구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을 봤다"며 "사회질서의 축을 이뤄왔던 장유유서(長幼有序)가 무너지고 있다. 사라지는 예의범절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법적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임신한 대중교통 이용객에 대한 배려도 법제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해 출산한 유모씨(37)는 "당시 임신배지를 달았는데도 누구 하나 자리를 양보해 주는 사람이 없어 계속 서 있다 결국 하혈까지 했다"며 "정부의 홍보강화만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보건복지부와 각 지방자체단체는 임신 초기 겉모습만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임신부가 주변의 도움과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역 보건소를 통해 임신 배지를 보급해 주고 있다.
■제도화는 부작용 낳아
반면 공익 캠페인 활성화 등을 통해 인식개선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한국시니어클럽협회 오현균 사무국장은 "핵가족화로 가족 구성원 중에 노인이 빠져 있는 경우가 보편화되면서 윗사람에 대한 공경의 문화가 사라지는 추세"라며 "개발시대 경제성장을 이룬 주역들 노인 세대는 본인보다 자식세대를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아와 노후준비를 제대로 못한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사회적으로 대접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심리가 많다. 이를 젊은층들이 이해하는 방향으로 인식을 바꾸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교통약자석 강제화는 자칫 법적 사각지대를 불러올 수 있는 만큼 법제화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관계자는 "교통약자석을 입법화 한다는 것은 위반시 경범죄에 준하는 과태료 등을 부과하겠다는 것인데, 가령 정상인이 몸이 불편해 해당 자리에 앉더라도 처벌이 이뤄지는 문제가 발생하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며 "미풍양속에 반한다고 해서 규제를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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