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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상생의 나라 미얀마] (5·③) "로컬 기업과 공동제작 등 미래 보고 투자"

5 현지진출 노하우를 듣다<끝> ③음윤희 MKCS 글로벌 대표
미얀마에 한국 드라마 등 1000여편 소개

[공감과 상생의 나라 미얀마] (5·③) "로컬 기업과 공동제작 등 미래 보고 투자"

지난 2002년 MBC 드라마 '달콤한 스파이'가 한국 드라마로는 처음 미얀마 TV 전파를 탔다. 로컬 콘텐츠 제작 능력이 전혀 없던 미얀마는 뉴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TV 시간대를 중국과 일본 드라마로 때우고 있었다. 현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TV 시간대의 80~90%가 한국 드라마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드라마와 함께 미얀마 전역에 한류 바람이 뜨겁게 일었다.

그 중심에 음윤희 MKCS 글로벌 대표(사진)가 있었다. MKCS 글로벌은 한국 콘텐츠를 미얀마어로 번역해 현지 방송사에 공급하는 업체다.

지난 10여년간 음 대표가 미얀마에 소개한 한국 콘텐츠는 1000여편에 이른다. 단일 국가 기준 프로그램 수출량으론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올해 1월에는 미얀마 정부의 요청으로 한국 문화콘텐츠 전문 채널인 '4-레이디스' 채널을 새롭게 열었다.

음 대표는 오는 5월 미얀마 양곤에서 열리는 한국우수상품전(코리안 엑스포 2015)에 '4-레이디스' 채널 부스를 열고 미얀마 진출을 원하는 한국 기업들을 지원할 예정이다.

15일 본지 기자를 만난 음 대표는 "이제 단순히 한국 콘텐츠를 번역해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며 "로컬 채널을 선점하거나 로컬 기업들과의 공동 제작에 나서는 등 더욱 적극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찾지 않으면 한류는 어느 순간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얀마에서 홀로 한류를 일으킨 여성은 이제 사라져가는 한류를 지키기 위해 또다시 긴 싸움을 시작했다.

■미얀마, 새로운 꿈을 꾸다

음 대표가 미얀마 땅에 처음 발을 디딘 건 26년 전인 지난 1989년.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로 지내던 음 대표가 미얀마 발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 나서면서부터다. 음 대표는 미얀마에서 6년간 살면서 양곤외국어대학교에서 미얀마어를 전공했다. 1990년대 초 폐쇄적이었던 사회주의 국가에서 외국인이 대학을 가기 위해선 정부의 허가가 필요했다. 그의 입학은 각료회의를 거쳐 어렵사리 허가가 났다.

학업도 만만치 않았다. 미얀마어는 산스크리트어를 기반으로 해 문자도, 숫자도 고유 문자를 사용한다. 완전히 생소한 언어를, 대학교 학문으로, 현지인들과 경쟁하며 공부했다. 그렇게 쌓은 음 대표의 실력은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불교 경전을 해석할 수 있을 정도다.

6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국문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당시에 한국외대에 아직 미얀마어학과가 개설되기 전이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국문과에 들어가 '근대 한국문학과 미얀마문학의 비교연구'를 전공하는 방식을 택하게 됐죠."

2년 석사과정을 마칠 무렵 양곤외국어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받고 미얀마로 다시 건너갔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미얀마에는 일본과 중국 드라마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TV를 보던 음 대표는 한국 드라마를 들여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 방송국, 프로덕션 문을 직접 두드리기 시작했어요. 한국 드라마를 가져다 제자들과 함께 번역해 미얀마 현지 채널에 공급하기 시작했죠."

드라마와 함께 미얀마에 한류 바람이 뜨겁게 불었다. 한국인과 한국 상품, 한국 기업에 대한 인기도 치솟았다. "미얀마에서는 한국이 선호도 1위 국가예요. 드라마와 예능으로 중독된 한류 열기는 정말 엄청났죠. 미얀마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에도 최고의 지원군이 됐어요."

■한류, 이대로 가면 죽는다

위기의식을 느낀 건 이미 오래전이다. 한국이 독점하던 미얀마 방송시장에 필리핀, 태국, 인도와 같은 국가들이 진입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자국 콘텐츠를 한국 콘텐츠의 3분의 1 가격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인건비, 물류비가 비싸고 거리도 멀어 항공료도 비싸요. 필리핀, 태국과 같은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 비하면 치명적인 약점이죠. 한국 기준으로 아무리 싸게 공급한다고 해도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는 가격 경쟁이 불가능해요."

미얀마 미디어 시장에서 한류 콘텐츠 수입은 30%가량 줄어든 상태다. 현지 미디어 기업들이 서로 결탁해 한국 콘텐츠 공급을 줄이고 있는 탓이다. 음 대표는 한류는 철저히 시장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널이 너무 많아졌고 경제성장은 더디게 진행되니 방송사 수입은 점차 줄고 있죠. 광고와 콘텐츠 수입의 타산이 맞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한국 콘텐츠는 경쟁력을 잃어요. 미디어 기업들이 서로 결탁해 한국 콘텐츠 공급을 줄이고 여론몰이를 시작하면 미얀마에 불고 있는 한류는 어느 순간 갑자기 죽을 수도 있어요."

그는 단순히 콘텐츠를 변역해 공급하는 방식의 비즈니스는 승산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지 채널을 먼저 하나 선점하거나, 로컬 미디어 기업들과 제휴해 방송 플랫폼 수출이나 공동제작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해요. 지금 당장의 이득보다 발전 가능성이 많은 미얀마의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개념이죠."

음 대표는 이제 '한류 지킴이'를 자청하고 나섰다. "미얀마 진출을 준비하는 한국 기업들을 위해서라도 한류는 절대로 죽으면 안돼요. 처음 미얀마에 한국 드라마를 공급할 때도 그랬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저의 생각은 변함 없어요. 기업의 이득보다 이 땅에서 한류를 지켜내는 게 먼저예요. 그게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기자

■약력 △홍익대 미술대학 △양곤외국어대 미얀마어과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한국문학과 △학술진흥재단(KRF)파견 양곤외국어대 한국어과 파견강사 △재미얀마 한인회 부인회장 △문화산업교류재단(KOFICE) 미얀마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