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까지도 유럽에서는 법정에서 동물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갓난아이를 죽인 돼지나 곡식이나 과일을 먹어치운 쥐, 또는 메뚜기 등을 재판했는데 쥐나 메뚜기 등 해충의 국선변호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이 작은 피조물들을 법정으로 데려오는 일이었다. 교회 법정에서는 초원의 소유자가 인간인지 곤충인지가 다투어졌고, 배추를 파먹은 애벌레에게도 생명과 자유를 인정하기도 했다.
요즈음은 동물이 직접 재판을 받지는 않는다. 대신 일부 동물이 사람과 같이 살면서 그 대접이 많이 달라졌다. 서구에서는 일찍부터 핵가족화, 고령화 등으로 가족관계가 소원해지다 보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동물을 집에서 키우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러한 동물은 '반려'라는 말을 붙일 정도로 그 신분이 격상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호사를 누리는 견공(犬公)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애완견 생수' 광고 방송이 나온다. 이를 듣다보니 요즘 애완견들은 예쁜 옷을 입고 발톱 매니큐어를 하고는 주인과 함께 와인을 마시면서 클래식음악을 듣는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난다. 산책길에 '우리 아가'라는 말이 들려 주위를 돌아보면 어린애는 보이지 않고 개만 보이는 일도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애완견이 늘다 보니 그로 인한 법적 문제 또한 다양하게 전개된다. 최근 영국에서는 이웃 개 짖는 소리를 참지 못한 조종사가 그 개를 익사시키자 알프스에다 독일 저먼윙스 여객기를 충돌케 한 조종사의 정신질환과 연계해서 개를 잔인하게 죽인 공격적 성향이 과연 비행업무에 적합한지 여부가 거론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 주인이 여행을 가면서 개를 애견호텔에 맡겼는데, 그 개가 거기서 임신을 하게 되어 제왕절개 수술을 받다가 자궁결막염에 걸리게 되자 개 주인이 업주에게 수술 등 치료비 부담을 요구하면서 호텔 비용을 부담하지 않겠다고 하여 법적 싸움이 벌어졌다.
사람을 권리의 주체로, 사람 외의 물건을 권리의 객체로 분류하는 우리 민법상 동물은 물건에 해당하여 권리의 객체로 취급받는다. 위 사건에서는 개를 호텔에 유숙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창고에 물건을 맡긴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호텔 주인은 보관하는 개를 그 형상과 품질을 유지한 채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개 주인이 개를 돌려받을 때 개가 임신해 있다면 원래 상태대로의 물건을 돌려받은 것이 아니므로 호텔 주인은 채무불이행 책임을 질 여지가 있다. 다만 호텔 주인은 개의 임신에 대하여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점을 항변할 수 있는데 24시간 내내 개의 행동을 감시하거나 개마다 독방을 줄 수는 없을 것이고, 보관하는 개를 암수에 따라 분리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될 것인데, 그것이 과연 법적 잘못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런데 요즘은 개를 물건과 달리 취급하려는 움직임이 법원 판결에서 나타난다. 예컨대 자동차는 사고가 났을 때 수리비가 차 값을 상회하면 차 값만 배상하면 된다. 그런데 애완견의 치료에 관하여 최근 법원은 정신적인 유대와 애정, 생명을 가진 동물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여 애완견의 시가보다 높은 치료비를 지출하는 것이 사회통념에 비추어 시인될 수 있을 만한 사정이 있다면 치료비를 배상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애지중지하는 도자기를 깨뜨린 사람에게 도자기 값 외에 정신적 고통을 위자할 의무는 잘 인정되지 않는데, 애완견에 대하여는 그 애호가치에 대한 위자료를 인정한다.
그러나 법적으로 생명체를 물건과 같이 취급하는 문제점은 비단 애완견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법 앞에 모든 동물은 평등하게 인간의 이웃으로 대접을 받아야 한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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