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

DNA를 자르고 붙이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국내 공론화

DNA를 자르고 붙이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국내 공론화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난 '신의 아이' 빈센트와 시험관 수정을 통해 완벽한 유전인자를 가진 '맞춤형 아이' 안톤. 그리고 빈센트에게 자신의 우수한 유전자를 팔아 넘기는 유진 머로우.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SF영화 '가타카'가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2013년 국내 연구진이 처음 발견한 '제3세대(크리스퍼, CRISPR) 유전자 가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다.

유전자 가위(DNA 절단 효소)는 인간은 물론 동·식물세포의 유전자를 마음대로 교정하는 데 사용한다. DNA를 자른 후, 세포 내 복구 시스템에 의해 다시 연결되는 과정에서 유전자 교정과 변이가 일어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암과 에이즈 등 난치병 치료제 개발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생태계 파괴 및 '맞춤형 아기 탄생'이라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정부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등 '유전체 편집기술'에 대한 기술영향평가에 나서면서 국내 연구진들을 중심으로 관련 논의가 본격화 될 전망이다.

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5 세계과학기자대회'에서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김진수 단장(서울대 화학부 교수)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다.

■유전자 가위로 질병 DNA '싹둑'

앞서 김진수 단장은 지난 2013년 국제학술지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체 교정 사례를 처음 발표한 데 이어 올 초에는 이 유전자 가위가 원하는 유전자만 정확히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의도하지 않은 DNA 염기서열을 자르면 돌연변이가 생길 것이란 일각의 우려를 일축한 것이다.

김 단장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부분을 수술해 원상 복구할 수 있고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도 잘라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최근엔 다태 동물인 돼지를 이용해 신체 이식용 장기를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면 인간세포로 구성된 돼지 장기는 물론 이것을 사람에게 이식했을 때 일어나는 면역거부 반응까지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중국 연구진과 함께 특정 장기가 없는 돼지 태아를 만드는 데 성공했으며 현재 다음 단계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中 인간배아 조작…생명 윤리 논란

그러나 일각에서는 생명 윤리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중국 연구자들이 동물 배아나 인간 성체세포가 아닌 인간 수정란 및 배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교정을 시도한 사실이 전해지면서다.

실제 이날 행사에 연사로 나선 중국 상하이기술대학교(ShanghaiTech University)의 싱슈 황(Xingxu Huang) 교수는 폐기된 인간 배아를 유전적으로 조작하기 위해 당국의 연구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싱슈 황 교수는 또 지난해 2월 유전자 편집기술을 이용해 살아있는 원숭이로 발달되는 배아를 조작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 기술은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게 학계 분석이다.

이에 대해 생명윤리학자인 일본 홋카이도대학교(Hokkaido University) 테츠야 이시히(Tetsuya Ishii) 교수는 상당한 우려를 나타냈다. 중국은 배아의 유전자편집을 금지하고 있지만 엄격한 단속이 이뤄지지 않아 허가 받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와 같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부 생명공학자들도 인간의 정자나 난자, 배아에는 게놈 편집기법을 사용하지 말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래부, 유전체편집기술영향평가 나서

우리 정부도 올해 기술영향평가 대상 기술로 '유전체 편집기술'을 선정했다. 기술영향평가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이 경제·사회·문화·윤리·환경 등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그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고자 매년 실시하는 제도다.

미래부 측은 "유전체 편집기술이 미칠 영향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고자 해당 분야 전문가 뿐 아니라 사회과학분야와 시민단체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기술영향평가위원회를 출범할 예정"이라며 "오는 12월 기술영향평가 결과를 중앙행정기관에 전달해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elikim@fnnews.com 김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