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상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누구나 다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정상일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오랫동안 싸움에 익숙해 왔다. 비근한 예로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오랫동안 사활을 건 싸움을 해 왔고 또 하고 있다. 또 여기엔 이와 관련한 수많은 단체들이 뒤얽혀 복잡한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니 참으로 이상하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란 싸움의 다른 이름이란 말인가. 하긴 그렇게들 말해왔던 것도 같다.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들의 공통점은 역시 정치적 싸움이거나 외세에 대한 방어, 혹은 저항이 대부분이다. 왕권과 신권의 싸움이나 신권 내부의 각종 당쟁(사화)으로 조선을 설명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 근대 일본 등 외세와의 싸움도 그 안에 쇄국과 개화의 싸움, 갑오농민싸움을 비롯한 왕권(혹은 외세)과 민중의 수많은 투쟁, 의병투쟁에 내재한 근대와 반근대의 싸움 등 각종 싸움들이 내재해 있다. 해방 후 좌우익의 싸움, 남북전쟁, 그 이후의 분단싸움들은 아주 익숙한 것들에 속한다.
사회는 또 어떠한가.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가혹한' 경쟁이다. 그 경쟁으로 누군가는 승자가 되겠지만 누군가는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때때로 패자가 패배를 인정하지 못해 투신자살했다는 보도도 심심찮게 언론에 등장하곤 한다.
교육열이 그렇게 치열한 것도 따지고 보면 한국 사회의 전투성을 여실하게 반영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결과 승자는 우월감에 도취해 패자를 무시하고 패자는 열등감에 빠져 적개심으로 살아간다. 이것이 구한말 우리 사회가 적극 받아들여 문명화하려 했던 서구의 그 적자생존과 우승열패, 부국강병론의 역사적 결과이자 오늘날 우리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구도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초조와 불안과 조바심으로 이루어진 불안정한 사회이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민주라는 이름으로, 자유라는 이름으로, 평화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너무나 많이 너무나 오랫동안 싸워 왔다. 이러한 싸움의 환경에서 각종 논객이나 네티즌의 정도 이상의 공격성은 때로 섬뜩할 때가 있다. 이러니 살인적인 보복운전이나 가족 간의 어이없는 파괴적 불화, 살기등등한 왕따 폭력 등 각종 비정상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것도 그리 새삼스러울 것 같지가 않다.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주저 '슬픈 열대'에서 열대 원주민을 야만화하면서 자신들을 문명화했던 서구의 그 '변증법적 이성'이나 여러 시민혁명적 가치들도 크게 보면 서구적 나르시시즘의 하나로서 매우 서구 중심적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는 참혹한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을 불러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 그 본연의 정신에 충실하지 못하면 엄청난 부작용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겠다. 우리는 시시비비의 정당성만 생각했지 그 정당성 뒤에 가려진 싸움 주체들의 나르시시즘이나 자기중심성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설득과 타협, 관용과 양보 등의 평화로운 가치와 환경들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한 진지한 모색과 인식이 훨씬 더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해서 하는 말이다.
김진기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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