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 금융기관을 상대로 사실상 내부 견제 기능을 상실한 '사외이사 제도' 강화에 적극 나섰다.
금융권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이 크지만 크고작은 '부실 여신'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으면서 기존 사외이사 제도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관의 부실화 여부와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는 주요 의사결정 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하고 내부 견제 기능을 강화,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에 따른 방만 경영과 부실 대출 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거수기'가 아닌 '제대로 된'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은 최근 수출입은행과 중소기업은행 이사회에 사외이사를 구성원으로 명시하고, 반드시 3명 이상을 둬 이사회 과반수를 구성토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국수출입은행법 개정안'과 '중소기업은행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외이사의 내부 견제 기능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한국수출입은행법에는 은행장 1명, 전무이사 1명, 5명 이내 이사와 1명의 감사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내부 정관규정에 의해 사외이사는 2명이지만 이를 3명 이상 선임토록 아예 법으로 명시하자는 것이다.
중소기업은행법은 은행장 및 감사는 각 1명으로 하고, 전무이사 및 이사의 정수는 정관에서 정하도록 했지만 사외이사의 경우 정관에만 근거를 두고 있어 법적인 강제사항은 아니다.
반면 산업은행은 2009년 4월 통과된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에 따라 사외이사가 3명 이상, 이사회 구성원 총수의 과반수 이상이 되도록 규정돼 있다. 최근 수출입은행이 잇따른 '부실여신' 논란에 직면하면서 기존 경영진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경영진에 대한 내부 견제기능 미흡이 부실대출 등 각종 방만 경영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홍 의원은 "국책 금융기관의 경우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부실여신지원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모뉴엘, 경남기업과 관련해 수천억원의 부실여신 문제로 논란에 휩싸였고, 올해 3조원대 영업적자를 낸 대우조선해양의 최다 채권은행으로 약 8조원의 여신이 물려있다.
문제는 국책 금융기관으로서 결산순손실금이 발생하면 적립금으로 이를 보전하고, 적립금이 부족하면 정부가 보전하게 되는 구조로 결국 방만한 경영에 의한 금융기관 부실이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정부는 이미 올해 수출입은행에 본예산 400억원과 추가경정예산 750억원 등 총 1150억원을 출자키로 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교수는 "시장의 압력이 잘 작동하지 않고 정부의 정책적 의도가 국책은행들의 경영구조나 실적을 기계적으로 좌우하는 상황에서 정책적 의지의 과잉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그 방안 중 하나가 사외이사 확대와 권한 강화"라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사외이사가 제대로된 견제와 감시 역할을 하려면 정부로부터 독립된 주체가 추천하는 사람이 돼야하는데 과연 가능한 지가 의문"이라며 "우선 책임추궁장치 마련이 중요하다. (사외이사가) 독립적 판단을 하지 못했을 때 그들에게 책임을 지게하는 장치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fnkhy@fnnews.com 김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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