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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데이트 폭력 등 피해자 보호 위한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 놓고 논란

한국경찰법학회 토론회
아동·노인 보호 vs. 공권력 남용 우려

#1. 지난해 12월 대구에서 헤어진 남자친구가 피해여성을 지속적으로 찾아가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불을 지르겠다'고 행패를 부렸다. 6차례에 걸친 신고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가해자를 파출소로 임의동행하고 설득 등을 통해 위험상황을 일시 해소했으나 며칠 뒤 남자친구가 재차 피해여성을 찾아가 흉기로 살해했다.

#2. 지난 7월 내연관계인 남성 피의자가 헤어지자는 여성을 2차례에 걸쳐 성폭력하고 장기간 스토킹해 경찰이 신변보호 조치를 하던 중 이 남성은 여성을 흉기로 살해했다.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등 여성과 아동,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관계 내 폭력'이 잇따르면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경찰관 직무집행법'(경직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학계,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범죄예방 효과'와 '직권 남용에 대한 우려'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진통이 예상된다.

법률 개정의 골자는 '지속적인 위협에 노출된 약자를 (경찰이)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조치수단'의 마련이다.

경찰관 현장조치시 설득·경고·명령 등 경미한 수단을 우선 적용하고 제지·격리 및 보호조치 등 신체적 물리력이 수반되는 조치는 보충적으로 사용토록 명문화하자는 것이다. 현행 경직법은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사람'을 억류·피난할 수 있지만 '위해를 야기할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별다른 강제조치가 없다.

■약자 보호 위해 개정 필요성

경찰과 일부 전문가들은 여성과 아동 등 약자에 대한 지속적인 위협으로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해도 법률적 미비로 실효성 있는 현장조치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찰의 자의적 공권력 남용에 대한 우려'와 '인권침해' 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임수경 국회의원실과 한국경찰법학회는 26일 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관계 내 폭력 방지를 위한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성용 계명대 교수는 "기존의 경직법은 (공익적인 목적이 있어야 하고 수단 또한 목적의 중요도에 비례해야 한다는)비례의 원칙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주먹구구식으로 경찰의 개별적 수권(자격·권한·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나열하는 수준이었다"며 "경직법(4~6조)을 전면 수정해 생명·신체·건강 등에 대한 지속적인 위협에 노출된 약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조치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동환 경찰청 생활안전과장(총경)은 "경직법 개정안은 범죄 이전단계에서 약자에 대한 실효적 보호수단을 확보하고 경찰관 개인 재량에 따른 과도한 경찰력 행사를 제한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이라며 "가해 우려자 입장에서도 평생 씻지 못할 과오를 범하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범죄예방 vs 권한남용 우려

진희경 전국가정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도 "경찰이 관계 내 폭력을 방지하고 사회적 약자를 실질적으로 돕는데 이같은 개정방안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합의에 의한 추진에 적극 동의한다"며 "개정방안의 목적이 관계 내 지속적이고 고질적인 폭력으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실효적으로 보호하고 범죄를 예방하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주민 참여연대 변호사는 "기존의 개별법을 고쳐 특정범죄에 대한 대응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거나 개별 입법을 통해야 한다"며 "경찰의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권한과 업무방식을 규율하고 있는 경직법을 개정하면 권한 남용과 자의적 사용이 매우 심각하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성기 성신여대 교수도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경찰관에게 과연 범죄예방을 경험적으로 예측하고 이를 근거로 비례의 원칙에 따라 긴급조치를 행했음을 입증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임 의원은 "사소한 문제로 치부되기 쉬운 '관계 내 폭력'에 대해 국가가 정책적으로 해결책을 적극 모색해야 하는데도 경찰 권한의 한계 및 법률 미비 등 현실적 제한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토론회 이후 각계 의견을 수렴, 경직법 개정안 발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pio@fnnews.com 박인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