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핀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 입장을 대법원이 고수하기로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5일 백모씨가 법률상의 부인을 상대로 낸 이혼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심리에 참가한 대법관 13명 가운데 6명이 파탄주의 입장을 내는 등 대법원 전원합의체 내에서도 격론이 적지 않았지만 오랜 유책주의 판례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법원은 "파탄주의를 채택한 나라들은 재판상 이혼만 인정하고 협의이혼을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유책배우자라고 해도 협의이혼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라고 판결이유를 설명했다.
또 파탄주의의 경우도 미성년 자녀를 위해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가혹조항'을 두는 등 제한을 두고 있고, 유책배우자가 상대방을 부양할 책임을 지는 등 제도적 보완장치를 두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특히 "간통죄가 위헌결정을 받은 상황에서 파탄주의를 받아들일 경우, 법률상 배우자를 내�기(축출이혼) 위한 이중결혼을 허용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서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됐지만 양성평등이 실현됐다고 보기에는 미흡하고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로 생계유지가 곤란해지는 경우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976년 아내 김모씨와 결혼한 백씨는 세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가정불화를 겪던 중 1998년 내연녀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다. 이 사실을 안 부인은 백씨의 직장을 찾아가 소란을 부렸고 공무원이었던 백씨는 이 때문에 퇴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2000년 집을 나와 내연녀와 살림을 차린 백씨는 2011년 법률상의 부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법률상 부인인 김씨가 지금도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자면서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백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날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판단하면서 앞으로도 우리 대법원은 상당기간 유책주의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날 전원합의체 판결에 관여한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과반에 약간 모자라는 6명이 반대의견을 제시해 변화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민일영, 김용덕, 고영한, 김창석, 김신, 김소영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혼인의 실체가 소멸했다면 실질적 이혼상태"라면서 "그에 맞게 법률관계를 확인·정리해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쪽 배우자의 귀책사유는 재산분할이나 배상책임 등을 통해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만큼 유책주의를 고수해온 대법원 판례가 변경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판결 바로보기]
http://www.scourt.go.kr/sjudge/1442294817650_142657.pdf
ohngbear@fnnews.com 장용진 박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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