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처가 바뀌고 새롭게 사람들과 인사하다 보면 과거에 살아온 흔적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고향이 어딘지, 언제 결혼했는지, 아이가 있는지, 딸인지 아들인지, 어디를 출입했는지 묻기도 하고 묻기 전에 답하기도 한다. 그래야 서로 긴장의 끈을 잠시 풀어 놓고 소주잔을 부딪칠 수 있다.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면 매번 등장하는 질문이 "다음 대선에선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은가?"이다. 기자 생활의 절반을 국회와 청와대를 출입하며 정치부에서 했다는 얘기 때문일 것이다. "그걸 누가 알아요?"라고 피하지만 술기운이 오르면 마지못해 관전평을 내놓기도 한다.
뒤돌아보면 국민은 늘 새로운 키워드를 선택했다. 나름 그 키워드를 압축해 보면 '문민'(김영삼 전 대통령), '호남'(김대중 전 대통령), '서민'(노무현 전 대통령), 'CEO'(이명박 전 대통령), '여성'(박근혜 대통령) 등이다. 이 키워드 앞에 '첫'이라는 단어를 놓으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대권을 꿈꾸는 잠룡(潛龍)이라면 과거 대통령과 이미지가 겹치지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17년 대선에서 국민이 '글로벌'(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선택할지 '시민'(박원순 서울시장)을 손에 쥘지, 아니면 제3의 키워드를 제시할지 모르겠지만 또다시 가지 않았던 길을 갈 것이다.
새로운 인물과 키워드에 대한 갈증 때문인지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에는 국민의 평가가 그리 후하지 못했다. 집권 1~2년차는 '허니문 기간'이라는 것도 옛말이 됐다. 누군가는 대통령직은 당선과 함께 '5000만'이라는 적금을 깨고 시작하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적금은 깨는 순간부터 슬금슬금 사라진다. 다시 모으기는 쉽지 않다. 대통령 지지율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야박할 정도다. 특히 반대 세력의 반감은 아슬아슬해 보일 때가 많다.
최근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연설할 당시 재석률을 놓고 '텅텅 빈 곳에서 연설!'이라며 비꼬는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돌아다녔다. 어떻게 보면 재석률은 연설하는 해당 나라의 국력을 나타내는데 '셀프 디스(Self Dis·스스로를 비하함)'를 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의 정책과 행보에 대해 얼마든 비판을 할 수 있지만 대통령직(職)에 대해선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 국내에서도 대통령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해외 나가 존중받기를 바란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해외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하듯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제회의를 취재해도 비슷한 마음이다. 특히 세계 각국 정상들이 타고온 전용기를 눈으로 목격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나라도 최신 전용기를 갖고 있는 건 놀랍지도 않다. 미국은 똑같이 생긴 전용기 3대가 나란히 서있다. 미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바로 에어 포스 원(Air Force One)이 되며 나머지 2대엔 수행원이 타고 경호장비가 실린다. 일본도 전용기가 2대다. 경호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정치권의 반대로 전용기를 도입하지 못했으며 대한항공에서 장기 임차 형태로 운항되고 있다.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는 얼마든 있을 수 있다.
대통령직을 좀 더 잘했으면 하는 바람에 건전한 비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존중도 해야 한다. 반대 세력 입장에서도 대통령의 실패가 자신의 행복으로 돌아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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