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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DJ·JP와 '협력·경쟁의 30년'.. 민주화·계파정치 명암 남겨

YS-DJ 굴곡의 역사.. 한국 야당사의 양대산맥 군부 정권에 손잡고 맞서 직선제 개헌 등 곳곳 협력
JP와도 합종연횡.. 90년 3당 합당 전격 결행 정계은퇴 후 돌아온 DJ JP와 손잡고 대선서 승리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6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뒤를 따라 영면에 들면서 '3김(김영삼(YS)-김대중(DJ)-김종필(JP) 시대)'도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세 사람은 무려 30여년 동안 '협력과 경쟁의 관계'를 반복하며 한국 정치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특히 YS와 DJ는 한국 야당사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며 중대한 정치적 고비 때마다 협력과 경쟁을 이어갔다. YS는 두 사람 사이를 "가장 오랜 경쟁관계이고 협력관계"라며 '세계에서 유례없는 특수한 관계'로 표현하기도 했다. '3김 시대'는 민주화를 정착시키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지만 지역갈등, 계파정치라는 숙제도 남겼다는 평가다.

■YS-DJ '굴곡의 역사'

YS와 DJ는 민주화 투쟁에서는 손을 맞잡은 '동반자'였지만 권력 앞에선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영원한 '경쟁자'였다. 파란만장했던 정치 역정만큼이나 두 사람의 관계도 굴곡의 연속이었다. 두 사람은 출신 지역과 정치적 배경은 크게 달랐지만 권위주의 정권하에서는 함께 손을 잡고 군사정권에 정면으로 맞서며 민주화의 동지이자 한국 야당사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 이후 미국으로 망명했던 DJ가 귀국한 1985년, YS의 상도동계와 DJ의 동교동계가 두 사람을 공동의장으로 해 결성한 민주화추진협의회는 12대 총선을 계기로 야당을 복원한 뒤 직선제 개헌운동과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주도하며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꺼져갔던 민주화의 불길을 되살렸다.

하지만 권력 앞에서 두 사람의 밀월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1987년 대선 때 야권 후보 단일화의 길목에서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양김의 분열'은 민정당 정권의 재창출, 군사정부 연장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민주정부로 정권교체를 갈구했던 야권 진영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후보 단일화 실패'에 대해 DJ는 자서전에서 "나라도 양보를 했어야 했다" "너무도 후회스럽다"고 자책했다. YS도 DJ 서거 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천추의 한이 됐지. 국민에게도 미안하고…"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1987년 대선의 길목에서 등을 돌린 두 사람은 이후 22년간 반목의 세월을 보내다 지난 2009년 YS가 병상에 누워 있던 DJ를 전격 찾아가 문병한 뒤 "이제 화해한 것으로 봐도 좋다. 그럴 때가 됐다"고 밝히면서 극적 화해가 이뤄졌다.

■3김 시대 '빛과 그림자'는

5·16 군사쿠데타로 정치권에 등장한 JP가 1987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3김 시대'도 협력과 경쟁의 연속이었다.

3김의 팽팽했던 균형은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YS와 JP가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손잡으면서 무너졌다. 당시 YS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자신이 이끌던 통일민주당이 3당으로 전락하자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며 1990년 1월 당시 여당인 민자당, JP가 이끌던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결행했다. 이후 YS는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을 거쳐 대선 후보로 선출됐고 1992년 대선에서 DJ와 숙명의 대결을 벌여 승리, 대권을 거머쥐었다.

YS에게 패한 DJ가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영국으로 떠나면서 3김 시대도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엔 DJ와 JP가 손을 맞잡으며 3김 시대의 2막이 열렸다.

영국에서 돌아온 DJ는 1995년 지방선거 이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며 제1야당 대표로 정계에 복귀했고, 1997년 대선 때 JP와 손을 잡고 이른바 'DJP 연대'를 통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경쟁관계가 협력관계로 다시금 돌아서며 '3김 시대'가 화려하게 꽃을 피운 시기였다.

특히 군사정권의 잔재를 일소하고 민주화를 정착시키며 사회 전반적으로 각종 개혁조치가 단행된 '개혁의 시대'라는 평가다.


그러나 '3김'이 독자세력으로 정권을 창출하지 못하고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간 연대, 지역 간 연합으로 집권하면서 지역주의 팽배 등 사회통합의 과제를 남긴 시대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우리 정치가 3김 시대를 거치면서 직계와 계파, 지역 등으로 정치인을 규정짓는 폐해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현대 정치사의 영욕을 고스란히 간직한 3김 시대는 YS와 DJ가 대통령 퇴임과 함께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JP가 2004년 총선 실패 후 정계를 은퇴하면서 실질적으로 막을 내렸다.

fnkhy@fnnews.com 김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