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회의 바다' 향한 항해
음식·연료·예비부품 등 선박서 쓰는 모든 물품 품목 3만9000여종 달해
부산은 3000종만 취급 연 매출도 5000억 초라해 시장 활성화 정책 필요
"글로벌 항만을 꿈꾼다" 부산항의 도전 항만물류산업 활성화에 한 축을 담당하는 선용품 공급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항만을 낀 도시 부산이 세계 최초로 국제선용품 상설전시장을 여는 등 시장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를 비롯한 외국 항만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부산항 전경.
항만을 낀 도시는 바다가 경제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외지 상인들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포구와 선창은 선원과 사람들로 북적이며 도시가 발전해왔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1876년 부산항 개항 이래 139년간 부산은 세계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이자 우리나라 물류와 사람이 세계로 나가는 출구 역할을 해왔다. 개항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산항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배가 드나들었다. 그때마다 선원들은 부산항에서 쌀, 부식, 부품 등을 채워 다시 먼 길을 떠났다. 오늘날 항만물류산업 활성화에 한 축을 담당하는 선용품 공급업의 시작이다.
■갈 길 먼 부산 선용품시장
선용품은 음식과 연료, 일회용 잡화, 수리용 예비부품 등 선박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뜻한다. 항구를 떠나 바다에 있는 동안 배와 선원에게 필요한 모든 물품을 망라한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시장 규모는 급유를 제외할 경우 연간 7000억원. 이 중 부산지역 300여개 업체의 연간 매출액은 5000억원 수준으로 국내시장의 70%가량을 점유한다. 여기에 울산을 포함하면 전체 시장의 77%를 넘어선다.
국내시장에서는 경쟁상대가 없지만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초라한 수준이다. 아시아 최대 선용품시장인 싱가포르는 선용품 연간 매출액이 4조원에 달한다. 부산의 4배를 훌쩍 넘는다. 세계 선용품시장 규모는 2012년 기준 400억달러(약 41조원)로 추정된다.
물품의 가짓수도 크게 못 미친다. 세계선용품협회(ISSA)에서 분류하고 있는 품목은 3만9000여종이다. 싱가포르는 이 중 2만5000종을 다룬다. 국내에서 취급하는 품목은 3000종 안팎에 불과하다.
기업의 규모 역시 영세하다. 선용품유통센터 입주기업의 평균 매출액은 지난해 말 현재 26억원에 불과하다. 선용품 공급업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변경된 이후 업체가 난립하면서 폐업하는 업체도 속출하고 있다.
항만업계에 따르면 전국 각지에 산재한 선용품 공급업체는 1570여개에 달한다. 이 중 70%의 업체가 부산항에 집적해 있지만 실제 영업 중인 업체는 300∼400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새로운 시장이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크루즈선 시장 개척도 미진하다. 최근 부산항에 기항하는 크루즈선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크루즈선에 물품을 실은 적이 없다.
복잡한 유통단계와 온라인 마켓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점도 약점이다.
부산항이 올해 세계 5위의 컨테이너 항만으로 도약했지만 선용품시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공동구매.물류 도매법인 설립
부산은 뒤늦게나마 선용품시장 성장성에 기대를 품고 시장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항만공사(BPA)와 부산국제선용품유통조합은 지난 10월 세계 최초로 국제선용품 상설전시장을 열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부산항 국제선용품유통센터 1층에 마련된 전시장은 28개 부스와 상담실을 갖추고 각종 선용품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세계 어느 항만에서도 이 같은 전시장을 갖춘 곳이 없어 싱가포르를 비롯한 외국 항만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6월에는 부산국제선용품유통조합을 중심으로 전국 100여개 업체가 모여 (사)한국선용품산업협회를 창립하고 국내 선용품시장 경쟁력 강화에 앞장섰다.
협회는 상설 전시장 설치를 발판으로 내년 말까지 공동구매를 위한 도매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도매법인이 설립되면 영세한 업체들을 하나로 묶어 공동물류시스템을 구축, 유통구조 효율화와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복잡한 다단계 유통구조, 전통적 주문방식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손실 개선을 위해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국내 선용품 수준을 국제적으로 공인받기 위해 내년 9월 덴마크에 본사를 둔 세계선용품협회(ISSA) 정회원 가입을 추진한다. 같은 기간 부산항 국제선용품박람회(가칭)도 열 계획이다.
■시장 활성화 정책 지원 필요
남은 건 법적·제도적 뒷받침이다.
싱가포르, 암스테르담 등 선용품 선진 항만들은 무역우대주의 정책, 통관절차 간소화 및 환급절차 간소화, 정부 주도의 주기적인 선용품 전시회 및 박람회 개최, 국영기업을 통한 저렴한 창고 임대 등 선용품 활성화를 위해 정부, 관세청, 공기업 등의 전방위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기항선박 확대를 위한 '통과선박 자유항' 제도 시행, 개항지 이외 지역 출입 외국 무역선에 대한 출입허가 수수료 면제, 수출용 신조 선박의 선용품 적재시기 연장 등 선용품시장의 숨통을 터주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물류비용 절감을 위한 저렴한 부지 제공, 업종제한에 따른 불이익 해소 방안 등 선용품시장 활성화를 가로막는 장벽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김영득 한국선용품협회 회장은 "글로벌 시장과 크루즈 등 새로운 시장 개척은 업체들만의 힘으로는 어려운 점이 많다"면서 "해양수산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업체들과 공동 마케팅을 펼치는 등 뒷받침을 해준다면 앞으로 1조원을 넘어 2조~3조원의 매출 달성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선용품시장 단독으로 규모를 키우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선박급유시설.선용품공급시장.선박수리시설.배후단지 등 항만부대 서비스를 한곳에 모아 원스톱 종합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갖추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임재욱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는 "정부 당국이 조선수리업을 적극 유치하고 유류업을 강화해 선용품 공급업이 함께 발전하는 항만클러스터 구축과 같은 정책적 지원 없이는 선용품시장 단독으로 시장 규모를 키우기는 힘들다"며 "업계의 자구적인 노력과 정부의 종합적인 지원이 함께 어우러져야 선용품시장의 미래를 밝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
bsk730@fnnews.com 권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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