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전, 임기 만료를 앞둔 A은행장을 만났을 때다. 당시 막 은행을 담당하게 된 나에게 그는 "은행장 임기 3년은 너무 짧다"고 하소연을 늘어놨다. 중장기적 경영전략을 세워 추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은행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내게 그의 말은 단순히 임기를 연장하고 싶은 '투정' 정도로 들렸다. 2년이 지난 요즘, A은행장의 말이 새삼 와닿는다. 그간 다수의 은행장이 임기가 끝나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다.
수장의 임기가 1년가량 남은 은행에선 이미 '연임설'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연임에 성공한 은행장은 없다. 지주.은행 통합 이슈로 9개월가량 임기 만료시기가 늦춰진 이순우 전 우리은행장의 사례가 전부다. 연임 가능성과 함께 차기 은행장에 대한 하마평도 나온다. 업무파악에 취임 후 1년을 흘려보낸 은행장이 취임 2년차에 본인의 색깔을 드러내고 나면 마지막 1년은 '레임덕'을 맞게 되는 식이다.
그나마 3년으로 여겨졌던 은행장 임기가 최근엔 2년가량으로 줄었다.
조용병 신한은행장은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임기를 맞춘다는 명분하에,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민영화를 2016년까지 성공시킨다는 의지를 반영해서다. 특히 올해 9월 취임한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에게 주어진 임기는 1년6개월에 불과하다. 김주하 농협은행장도 내부규정에 따라 2년 임기가 조만간 만료된다.
국내 5대 은행 중 4곳 은행장의 임기가 2년 이하인 셈이다. 내년 취임 2년차를 맞는 3명의 은행장은 임기 마지막 해의 권력 누수현상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게 됐다.
2년에 불과한 은행장 임기는 장기적 관점에서 수익성 악화로도 직결될 수밖에 없다. 임기가 짧게 주어진 은행장들은 단기적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취임 1년차를 맞았던 은행장들은 자산 증대 등의 양적인 목표치를 취임 일성으로 내놓은 바 있다. 14년간 한국씨티은행장(한미은행장 포함)을 했던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역시 국내 은행의 수익성 악화 원인으로 짧은 은행장 임기를 꼽는다. 그는 "장기적 안목으로 경영전략을 세우고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기 위해선 6년(3년+3년)가량의 임기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양적 성과에 집중하다보면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국내 은행들의 수익성 악화는 하루이틀 얘기가 아니다. 금융지주 회장의 내부 장악력이나 규제산업 틀에 갇힌 인사보다는 은행의 경쟁력 회복이 우선시된 인사가 필요하다.
longss@fnnews.com 성초롱 금융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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