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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을 향해 뛴다] (3부·끝) 한국에서 수상자 나오려면

3부·끝  수상시기 예측하는 건 무의미.. 다음세대 위해 길 닦아주자

[노벨상을 향해 뛴다] (3부·끝) 한국에서 수상자 나오려면


올해 중국 한의학자 투유유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면서 국내 과학자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우리나라는 언제 노벨상을 받을까'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투 교수는 우리말로 '개똥쑥'으로 불리는 칭하오를 통해 신형 항말라리아제를 개발, 말라리아 환자의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데 기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한의학계에 '노벨상의 꿈'을 꾸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올해 노벨상 기획 시즌 2인 '노벨상을 향해 뛴다'를 통해 마지막으로 과학계 현실에 대해 적나라하게 얘기해준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봤다.

그동안 문제점으로 제기된 기초과학 문제, 과학자들의 연구환경, 정부의 과학정책, 노벨상 수상 가능성 등 네 가지로 나눠 짚어본다.

[노벨상을 향해 뛴다] (3부·끝) 한국에서 수상자 나오려면
서울대 박승범 화학부 교수 "한국, 지나치게 성과지향적 남들 안가는 분야 도전하라"


■전문가들,"2030∼2040년 노벨상 수상 가능"

노벨상과 관련해 과학계는 물론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대한민국에서 언제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할까'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노벨상 수상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다. 수상 시기로는 대체로 15~20년 뒤인 2030∼2040년을 꼽았다. 다만 연구실에서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수상 가능성에 대해선 긍정적이지만 구체적인 시기를 꼽지는 않는다.

이공계 출신인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은 "보통 노벨상을 받는 사람은 해당 연구를 한 지 30년 후에 상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기초과학에 본격적으로 인력과 재원을 투입한 지가 10여년 됐으니 앞으로 15~20년 안에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내다봤다.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도 "2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가 미국, 일본 등에 비해 연구수준이 낙후했지만 지금은 노벨상 후보 탈락이 아쉽다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확실히 달라졌다"며 "20~30년에 걸친 장기 연구가 결실을 앞둬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높은 과학자도 몇 명 있다"고 강조했다.

[노벨상을 향해 뛴다] (3부·끝) 한국에서 수상자 나오려면
고등과학원 이기명 교수 "고등학교 문·이과 상관없이 기초과학, 필수과목 돼야"


■'창의성·끈기'가 노벨상 지름길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분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구에 대한 끈기와 새로운 아이디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특히 성과지상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01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팀 헌트 영국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는 "노벨상은 질문을 정해놓고 쫓아가는 게 아니라 이런 질문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것을 발견할 때 따라온다"며 "과학의 창의성이란 개인의 재능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므로 사회의 구조가 오히려 재능을 죽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창의적 사고를 통해 남들이 하지 않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과학계 풍토는 너무 성과지향적이다. 서울대 박승범 화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과학지원 정책은 예측가능하고 성과지향적인 경향이 있다"며 "전에 없던 것을 창조하거나 발견하는 과학자들에게 주어지는 노벨상과는 분명히 괴리가 크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를 쫓는 잠재력이 큰 연구인력의 저변 확대가 노벨상의 열쇠"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과학계에서 생소한 분야였던 화학생물학을 국내에서 선구적으로 연구했다. 그가 연구한 '서울 플로어(Seoul-Fluor)'를 비롯한 60여종의 새로운 형광 유기물질들은 현재 신약개발 등 바이오센서 산업에 획기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존에 없던 새로운 분야가 노벨상에 접근하는 길이라는 것이다.박 교수가 공부하던 20년 전에는 '화학생물학'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도 화학과가 화학생물학과로 바뀔 정도로 주류가 됐다.

융합연구도 중요한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고려대 박홍규 물리학과 교수는 "세계적인 흐름이 융합연구이므로 네이처같이 영향력 지수가 높은 저널에 논문을 내기 유리한 측면이 있다"면서 "심도 있는 융합연구를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공동연구를 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는 여러 연구자들과 보다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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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강봉균 생명과학부 교수 "엉뚱한 상상이 큰일 낼수 있어 마음껏 연구하는 환경 조성을"


■창의적인 조기교육 중요

한국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논의할 때 항상 지적되는 문제가 기초과학이 약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구자를 키워내는 데 문제가 없을까. 신성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은 "현재 국내 기초과학의 양적 수준은 경이적으로 성장해 세계 10위권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문제는 질적 수준"이라며 "질적 측면에서는 세계 30위권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기초과학의 역량 강화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창의성과 통찰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둔 조기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광운대 천장호 총장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는 상상력과 도전정신, 창의 및 융합적인 사고가 가장 유연할 때이므로 조기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때부터 과학자를 만들어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는 관찰, 관찰을 넘어 통찰, 통찰에 상상을 구체화할 수 있는 창의 및 융합능력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어릴 때부터 이공계 교육을 시키더라도 기업에 취직하거나 성적이 좋으면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2018년 대입시험부터는 문·이과가 통합된다. 이렇게 되면 과학계의 경쟁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고등과학원 이기명 교수는 "문.이과 통합교육은 학생들이 어려운 과목인 수학, 과학 교육을 기피해 더욱 약화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고등학교에서 문.이과 구별 없이 기초과학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인문상경계열 학생들도 미적분이나 물리학, 화학, 생물 등을 한 학기씩 필수로 공부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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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서상기 의원 "내년 국가 R&D 예산 줄어 과학기술 정책지원 계속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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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민병주 의원
■연구실, 20~30년 연구할 수 있어야

과학자들의 연구환경도 개선돼야 할 요소로 지적된다.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은 노벨상 배출 이력이 많은 일본에서 대학원을 다녔다. 민 의원은 일본 연구소가 모두 제대로 된 연구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가 공부했던 일본 원자력연구소에서는 실험하기 3개월 전에 필요한 부품리스트를 정리해서 행정실에 보내야 했다. 처음 해보는 실험이기 때문에 3개월 전에 정확히 예측할 수 없어 결국 더 많은 부품이 필요하거나 남는 부품이 생기게 된다. 실험 전에는 뭐가 필요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부품이 모자랄 경우 실험은 거기서 멈춰야 했다. 이 때문에 결국 1년을 허비해야 했다.

이에 비해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는 실험준비를 하다가 부품이 필요하면 연구자가 곧바로 업자에게 전화하면 된다. 업자는 부품을 공급하고 영수증을 직접 행정실에 전달한다. 연구자 입장에서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민 의원은 "그 이유를 이화학연구소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이 때문에 원자력연구소는 노벨상을 못 받고 이화학연구소는 받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노벨상 수상을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하지만 우리나라는 연구자에게 부과되는 행정 등의 부수업무가 지나치게 많다"고 지적했다.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얘기는 이를 잘 반영한다. 신야 교수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는 기초연구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응용연구까지 갈 수 있도록 하는 절차가 있다"며 "하지만 일본에 들어왔을 때는 연구환경이 연구자 편의대로 돼있지 않아 어려움이 컸다"고 회고했다.

더불어 연구실의 연구풍토도 중요하다. 신야 교수는 "오랫동안 연구를 하다 보면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나올 때가 많다. 실패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이러한 결과들이 오히려 자극과 동기를 부여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는 수상까지 걸린 기간이 20~30년에 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서울대 강봉균 생명과학부 교수는 "기초과학을 육성하려면 과학자들이 편하게 창의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 엉뚱한 사고가 엉뚱한 업적을 만들고 그것이 20~30년 뒤에 노벨상이라는 결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마인드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연구재단 정근민 이사장은 "과학자들이 국제무대에서 국제저널에 게재하는 것뿐 아니라 국제무대에 나가서 발표하고 같은 연구분야 집단과 서클에서 같이 교류해야 한다"며 "본인의 연구를 세계 무대에 알리고 주도적인 위치에서 동참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벨상을 향해 뛴다] (3부·끝) 한국에서 수상자 나오려면
카이스트 윤덕용 명예교수 "노벨상에 목맨 연구 하지말고 연구의 본질적 가치를 찾자"


■기초과학 정책적 지원 지속돼야

물론 이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정부는 해외 우수연구자 유치에만 지원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해외 석학이 진짜 한국 연구자와 연구를 하고 싶어서 찾아오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일본은 영어를 못해도 해외 우수 연구자들이 통역을 써서라도 교류를 원하는 해외 과학자들이 몰려온다.

정부는 예산을 꾸준히 지원해 과학자들이 경제적인 부담 없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정부는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줄이는 등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는 19개 부처 373개 주요 과학기술 관련 R&D 예산은 올해 12조9350억원에서 내년에는 12조6380억원으로 2.3% 쪼그라들었다. 특히 정부의 R&D 예산이 줄어든 것은 1991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내년도 정부 전체 예산은 4.1% 늘어나는 데 국가 R&D 예산을 2.3% 줄인다는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약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이런 현실은 과학기술인들의 사기 저하는 물론이고 국가의 미래 경쟁력 제고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신희섭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단장도 "일본은 장기불황으로 어려울 때도 R&D 예산을 줄이지 않았다"며 "배가 고프다고 씨감자를 먹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예산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와 집행도 중요하다. 민병주 의원은 "일본 규슈대에서 연구할 당시 가속기를 이용해 실험을 했는데 가속기를 만드는 비용이 국가에서 지원된 것은 물론이고 10년간 운영비도 꾸준히 국가에서 지원됐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가속기를 만드는 비용에서 예산지원이 끝나 버린다"고 설명했다. 민 의원은 "가속기 같은 대형 장치나 연구시설은 운영하는 사람에 대한 비용, 전기료, 물값 등이 엄청나게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예산이 편성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 발전 토대에서 추진돼야

전문가들은 노벨상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할 게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큰 틀 속에서 노벨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카이스트 윤덕용 명예교수는 "최근 노벨 과학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고 정부 지원 역시 과거에 비해 늘고 있다"면서 "하지만 문제는 연구를 하는, 연구를 위한 환경과 여건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과학을 연구하는 본질적인 가치보다는 맹목적으로 '노벨상'에 목매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노벨상은 앞으로 100년 후에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 세대에 노벨상을 한 번 받는 것으로 끝낼 것인지 아니면 다음 세대에도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지를 과학계나 관련 종사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에게 물어볼 일"이라고 강조했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기자

특별취재팀 정명진 팀장 최갑천 이설영 김미희 연지안 박세인 고민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