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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고통, 범죄피해자 지원 허와 실] (4) 3년만에 짓밟힌 코리안드림 下

야구 방망이로 때리고 반찬에 독극물까지 넣어
法, 처벌 대신 격리조치..수시로 와서 괴롭히기도

[끝나지 않은 고통, 범죄피해자 지원 허와 실] (4) 3년만에 짓밟힌 코리안드림 下


결혼 1년여가 지나면서 남편 입에서 거친 단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남편이 회사 동료들의 말을 A씨에게 옮기는 날이 늘면서다. 남편 말에 A씨는 화가 치밀었지만 침착하기 위해 애썼다.

"그 놈이 또 그러더라. 조선족 여자들 국적을 따기 위해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던데 조심하라고…"

A씨는 남편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열심히 살면 다른 사람들의 악담도 수그러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남편은 A씨에 대한 의심이 깊어지고 있었다. 서울 광화문 근처 삼겹살집에서 서빙을 하던 A씨에게 남편은 수시로 전화를 걸었다. 식사 시간 때면 손님이 몰려 정신없던 A씨는 남편 전화가 불편했고 사장 눈치가 보였다. 식당 직원들끼리 회식 자리가 있을 때면 남편이 동영상까지 요구했다.

"지금 같이 있는 사람들과 같이 찍은 동영상을 휴대폰으로 보내봐라"

■남편의 폭언에 이은 야구 방망이

입이 거칠어지던 남편은 가족들을 향해 폭력도 휘두르기 시작했다. A씨의 어머니 병 문안을 놓고 벌어진 말다툼에서 남편은 A씨의 목을 졸랐다. 첫째인 어린 딸이 막 걷기 시작할 때쯤에는 반찬 투정을 하던 아이의 배를 발로 걷어차기까지 했다. 폭력적으로 변하는 남편을 두려워하면서도 아이들을 생각해 버티던 A씨는 2013년 말 결혼한 지 7년여 만에 처음 이혼을 요구했다. '이혼'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A씨는 남편 역시 지금 상황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퍽'. A씨가 이혼을 요구한 다음날 새벽이었다. 남편 손에는 야구방망이가 들려있었다. A씨의 베개는 피로 물들었다. 병원 침대에서 정신을 차린 A씨는 남편의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 수사기관 역시 A씨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법원에서 합의 이혼 절차를 진행하도록 도와줬다.

"아이들의 아빠가 감옥에 있는 것만은 피하고 싶습니다. 이혼을 하더라도 아이들의 아빠이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처벌 대신 남편을 가족으로부터 격리시켰다. 이혼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A씨는 몸이 낫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일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병원에서는 입원을 권했지만 치료비도 부담스러웠다. 하루 빨리 남편과 이혼 재판을 시작하고 혼자서라도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살해 당할 뻔한 아내… 남편 출소 전에 이사를

법원의 격리조치는 강제력이 없었다. 남편은 수시로 집에 들락날락했다. A씨는 남편이 두려웠지만 이혼을 계속 요구했다. 남편은 한동안 자신의 폭력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얼마 못 갔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성치 않은 몸으로 일을 나서는 A씨에 대해 의처증 증세까지 보였다. 결국 남편은 지난해 5월 선을 넘어서는 행동을 저질렀다.

이혼 문제로 남편과 말다툼을 한 A씨는 바람을 쐴 겸 동네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술을 한잔 하고 저녁 9시께 귀가했다. 다음날 출근을 생각해 꿀물을 마시는데 맛이 이상했다. 그날 새벽 A씨는 설사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다음날 A씨는 퇴근 후 집을 청소하다 붕산이 담긴 봉지를 발견했다. 손이 떨렸지만 '설마'하는 마음으로 봉지를 숨겼다. 이튿날 A씨가 자신의 아침 식사를 차리는데 고추볶음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고추 하나를 집어 먹자 바로 속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A씨는 집을 나와 경찰서로 달려갔다. 남편은 경찰 조사에서 '부인만 즐겨 먹는 고추볶음에 붕산을 넣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남편은 형사처벌을 면했다. 여전히 A씨는 남편의 처벌을 원하지 않았고 음식에 탄 독극물 함량도 사법처리 기준에 미달했다. 가족들로부터 재격리된 남편은 '이혼만은 하지말자'는 연락을 계속 했다. A씨는 음식에 독극물을 넣은 남편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다.

붕산 사건이 발생하고 두 달이 흐른 어느날 남편이 집에 불쑥 찾아왔다. 남편은 이혼 결심에 변함이 없다는 A씨를 폭행하고 준비한 노끈을 꺼내 목을 졸랐다. A씨는 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A씨의 비명을 들은 이웃집 주민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 남편을 제압한 경찰이 A씨를 응급차량에 실었다. 딸과 아들은 방 한쪽에서 양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흐느끼고 있었다.


A씨는 수감 중인 남편이 가족들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두렵다. A씨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사건이 벌어진 집에서 여전히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A씨의 바람은 이 집을 떠나는 것이다. 남편이 출소하기 전에….

relee@fnnews.com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