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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명품 화장품

혁신국가인 미국이 유럽을 이기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구두, 화장품, 패션, 시계, 와인, 가죽제품 같은 명품들이다. 명품은 연륜에서 나온다. 미국은 나라가 세워진 지 240년밖에 안 됐다. 수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을 당할 재간이 없다. 일본도 명품에선 유럽에 뒤진다. 전후 일본은 라디오, 카세트, TV, 컴퓨터산업을 주도했지만 명품 시장을 뚫진 못했다. 일본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나라도 유럽이 꿰찬 명품 시장은 난공불락의 벽이다.

베스트셀러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을 쓴 모타니 고스케는 "중국에 맡길 수 있는 일은 (중국에) 맡기고 (일본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를 따라 고급품 분야로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유럽국은 첨단 기술력에서 일본의 상대가 안 된다. 하지만 대일 무역에선 꾸준히 흑자를 올린다. 그 뒤엔 비쌀수록 잘 팔리는 명품이 있다. 한국도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뒤 되레 무역적자가 커졌다. 명품 핸드백 등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프랑스 등은 중국.인도의 소득이 높아질수록 쾌재를 부른다. 돈 많은 중국인·인도인들은 먼저 스마트폰, TV, 냉장고, 자동차를 찾는다. 그다음은 사치품이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최대 수혜자는 유럽 국가들이다. 모타니는 "(일본) 화장품은 상당 부분 그(명품) 수준에 도달했다"며 이는 "일본인 피부에 맞는 제품은 아시아인에게도 맞는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SK-Ⅱ를 염두에 둔 발언 같다.

한국은 어떤가. 해외 부자들이 기꺼이 돈을 쓸 만한 한국산 명품은 아직 없다. 스마트폰, TV, 냉장고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구두, 패션, 시계는 한참 처진다. 다만 화장품은 그 가능성이 엿보인다.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LG생활건강의 후 브랜드가 좋은 예다. 국내 면세점 시장에선 이미 국산 화장품 매출이 SK-Ⅱ.샤넬.랑콤.에스티로더 같은 외제를 제쳤다. 중국 관광객 유커들에게 설화수.후 매장은 필수코스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화장품 규제프리존을 만들기로 했다. 26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이다. 충북 오송에 설치될 규제프리존에선 화장품 신기술.신제품을 자유롭게 테스트할 수 있다.
규제기관인 식약처의 열린 마음이 반갑다. 화장품이 진정한 명품으로 거듭나려면 중국을 넘어 인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로 판로를 넓혀야 한다. 궁극적으론 유럽.미국 시장이 목표다. 지레 겁먹지 말고 한번 해보자.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