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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88) 출근길 지키는 '5678도시철도 역무원들', 그들을 괴롭히는 건, 고된 일이 아니라...

밤 12시 막차를 떠나보내고 새벽 4시 첫차를 준비하는 사람들
그들을 괴롭히는 건, 고된 일이 아니라 억지민원이었다

서울 지하철 5·6호선 청구역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 오전 4시10분이다.

동이 트기 한참 전이지만 역무원들은 서둘러 오늘의 첫차를 맞을 채비를 했다. 전날 오후 6시부터 근무한 이들은 새벽 1시께 잠자리에 들어 쪽잠을 자다시피 했지만 서울시민의 안전이 그들의 손에 달린 만큼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일찍 오셨네요!" 지난 5일 오전 4시30분 청구역 입구 셔터 너머로 반듯한 옷매무새를 갖춘 안준영 청구역 부역장(52)이 밝게 인사를 건넸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영하로 뚝 떨어진 날씨에 다소 얇아 보이는 근무복이었지만 안 부역장은 "시민들을 직접 대하는 만큼 단정한 복장과 용모는 역무원이 갖춰야 할 기본자세"라며 웃어보였다.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88) 출근길 지키는 '5678도시철도 역무원들', 그들을 괴롭히는 건, 고된 일이 아니라...
지난 5일 5678도시철도 안준영 청구역 부역장이 지하철 운행에 앞서 간밤에 선로 이상은 없는지 일일히 확인하고 있다. 청구역은 5·6호선이 지나는 환승역으로 총 4개의 노선을 점검해야 한다. 이날 선로 점검하는 데만 약 1400m를 걸었다. 사진=김문희 기자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선로 및 시설물 점검

청구역의 첫차는 평일 기준으로 5호선 방화행과 6호선 봉화산행이 오전 5시35분에, 6호선 응암행과 5호선 마천행이 각각 오전 5시38분과 5시53분에 출발한다. 안 부역장은 첫차가 들어오기 전까지 역의 시설물을 점검하기 위해 뛰다시피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전 4시30분부터 시작된 일과지만 5호선과 6호선이 지나는 환승역의 선로 4개를 비롯해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등 각종 시설물의 이상 유무를 첫차가 들어오기 전까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 부역장은 가장 먼저 지하 2층에 위치한 6호선 승강장의 조명을 켜고 스크린도어를 확인했다. 간혹 스크린도어가 안 열리는 경우도 있어 사전점검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안 부역장은 말했다. 그는 "청구역을 지나는 5호선과 6호선은 약 15~16년이 된 선로"라며 "정기적으로 점검 및 보수를 하고 있지만 최근 신설된 노선에 비해서는 노후됐기 때문에 작은 변화라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절대 지나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안 부역장은 5호선과 6호선의 상·하행선을 빠른 걸음으로 일일이 돌며 선로에 이상이 없는지 꼼꼼히 둘러봤다. 이따금 노후된 시설물 등이 선로 위 천장에서 떨어지거나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 벌어진 틈새로 휴대폰, 교통카드, 지갑 등이 떨어져 있을 경우 종합관제탑에 알린 뒤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안 부역장이 첫차가 들어오기 전 선로 점검을 하는 데만 걷는 거리는 약 1400m에 달한다. 한 선로당 약 170m에 달해 지하 2층과 4층을 오르내리며 총 4개 선로를 둘러보는 데만 1㎞가 넘는 거리를 걷는 셈이다.

청구역 입구 셔터는 안 부역장이 선로 점검을 모두 마친 뒤에야 열렸다. 지상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가동해 지상으로 올라가자 역내 근무하는 점포 상인들과 환경미화원들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네요. 수고하세요!" 역내 상인들의 인사를 뒤로 하고 안 부역장은 3개의 입구등과 시설물을 돌아보며 점검을 이어갔다. 특히 겨울철에는 눈이나 비가 내릴 경우 계단이 얼어 지하철 입구에서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그는 "그런 날은 아무래도 혼자 처리하기 버거운 업무량이기 때문에 사회복무요원과 함께 발 빠르게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구역은 총 10대의 에스컬레이터와 5대의 엘리베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안 부역장은 "에스컬레이터 등 시설물이 많은 만큼 노약자와 취객 안전사고가 많아 늘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최근 특히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나면서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손잡이를 잡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안전사고가 빈번히 발생한다"고 말했다. 역무원은 안전사고 발생 시 119 구급대원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시민들을 보호하고 응급처치를 하는 등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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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차 무사히 보낸 뒤에야 한시름…그러나 이제 시작

첫차 시간이 다가오자 이른 시간인데도 청구역에는 시민들이 제법 모여 들었다. 첫차를 기다리며 신문을 읽는 중년 남성을 비롯해 다소 피곤한 기색으로 의자에 앉아있는 중년 여성들도 눈에 띄었다.

"지금 봉화산, 봉화산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오전 5시35분이 되자 이윽고 청구역의 첫차인 6호선 봉화산행 열차가 선로에 들어섰다. 승객들이 안전하게 승차한 뒤 역무원은 기관사가 있는 방향을 향해 두 팔로 큰 원을 만들어 보였다. '승강장의 승객들이 모두 탑승했으니 열차의 문을 닫고 출발해도 좋다'는 신호다. 만일 열차로 승객이 갑작스럽게 뛰어드는 경우를 대비해 역무원과 기관사 간 수신호를 확인한다. 안 부역장은 "기관사가 거울로 승강장의 승객들이 탑승을 완료했는지 확인을 하지만 일부 선로의 경우 곡선으로 이뤄져 있어 반사거울만으로는 승객들의 탑승 상태를 확인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 역무원의 수신호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안 부역장은 이같이 4개 선로에 첫차가 무사히 통과한 후에야 한시름 내려놓았다. 그러나 역무원의 일과는 첫차를 보낸 이후에도 쉼 없이 이어졌다. 다급하고 예외적인 일들이 바로 심야시간과 첫차를 전후한 시간대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밤낮없이 긴장을 한시도 늦출 수 없는 업무에도 안 부역장은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조금 고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이것이 제가 맡은 책임이자 임무인데 절대 소홀히 할 수 없죠" 지하철을 통해 많은 사람이 오가는 만큼 역무원의 역할도 클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전 8시부터 근무를 시작하는 주간조가 도착하자 역장과 부역장, 당직자를 비롯한 사회복무요원 등이 함께 시민 민원 응대부터 열차운행 관리, 시설물 관리 근무를 이어갔다. 출근시간이 다가오면서 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기 때문에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안 부역장은 이후에도 역내 화장실 점검을 비롯해 교통카드 충전기기와 지폐교환기 등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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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무원을 힘들게 하는 '억지 민원'…"선진 시민의식 필요"

지하철 역무원은 역 운영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담당한다. 시민 민원 처리를 비롯해 열차운행 관리, 시설물 관리, 수익금 관리 등이 이에 해당된다. 특히 이 가운데 시민들의 민원 처리도 업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안 부역장은 업무 가운데 가장 보람되면서도 가장 힘든 일로 '시민 응대'를 꼽았다. 일부 시민들이 간혹 역무원에게 억지스럽거나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할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토로했다. 안 부역장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역내 이동 시 무거운 짐을 들어달라는 요청이 가끔 있다. 그런데 현장에 나가보면 충분히 짐을 들어줄 건장한 남성과 동행하고 있음에도 역무원에게 아랫사람 대하듯 지시하는 시민이 있어 심적으로 힘들다며 상담을 요청하는 후배들이 있다. 역무원이 아니라 내 아버지이고 내 딸이었더라도 그렇게 대했을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민원 응대 시 미소를 띠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만신고를 하거나 시민응대센터 역무원에게 다짜고짜 욕설을 하고 가는 일부 시민도 있어 역무원들이 가슴앓이를 한다는 것이다.

안 부역장은 "그런 일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마음 아픈 현실인 것도 사실"이라며 "다행히 대다수의 시민은 도움을 드렸을 때 고마움을 표해주셔서 내 일처럼 보람되고 기쁠 때가 더 많다"고 전했다.
그는 "예전에 한 어르신이 종친회 연락처를 적어놓은 수첩을 분실했다며 사색이 돼 사무실을 찾은 적이 있었다"면서 "당시 수십명의 연락처를 한꺼번에 잃어버려 하얗게 질린 어르신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선 어르신을 안심시킨 후 열차운행이 끝난 뒤 선로에 떨어진 수첩을 찾아 돌려드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역무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 그리고 고객관리"라며 "장애인이나 노약자 등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에게 내 일처럼 도움을 드렸을 때 결과를 떠나서 고마움을 표해줄 땐 보람을 느끼고 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