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의 좌절..직장 구하기 너무 힘들어 결혼·출산은 꿈에 불과
40~50대의 불안..퇴직후 제2의 인생 막막, 장바구니 물가도 껑충
60대 이상의 고난..자녀에 부담되기 싫은데 생활비·건강 걱정 한가
설 민심은 매우 흉흉했다. 경제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중산층과 서민들은 팍팍한 살림살이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언제쯤 경제가 좋아지나'만을 걱정했다. 특히 설 연휴 초반 터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도발은 국가안보 우려까지 덧칠하면서 가뜩이나 경제 한파에 꽁꽁 언 국민들의 설 밥상머리 민심을 짓눌렀다. 본격적인 인생을 준비해야 할 20~30대는 극심한 취업난과 결혼비용·집값 마련에 허덕이고, 인생 황금기를 보내야 할 40~50대는 자녀교육과 근로불안·노후대비 등에 밤잠을 설치고, 안락한 노년기를 보내야 할 60대 이상 노년층은 빈곤과 건강문제 등으로 힘든 노후를 버텨내고 있었다. 특히 정치권이 협력과 자성보다는 '네탓 공방'과 정쟁만을 일삼고 있어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생안정보다는 당리당략 싸움에만 몰두해 있는 정치권에 '유권자의 이름으로'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아예 '정'(政)자(字)와 '치'(治)자(字) 모두 바꿔야 한다'는 엄중한 '경고'와 함께 적극적인 투표를 통해 '특권에 물든 국회의원'보다는, 민생만을 위한 '일꾼 국회의원'을 뽑겠다는 의욕을 내비쳤다. 파이낸셜뉴스는 설 연휴 기간인 6~10일 5일간 지역별·연령대·직군별로 경제·정치·사회 분야 등에 대한 설 민심의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한 면접취재를 한 결과 취업난, 주거난, 살림살이 걱정, 불안한 노후 등을 가장 시급한 해결과제로 꼽았다.
#."뭐 먹고 살까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 신모씨(31)는 요즘 고민이 많다. 2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 직장을 찾겠노라고 결정했을 때는 의욕으로 가득했다. 구직전쟁을 치르는 이들이 들으면 '팔자 좋은 소리'라는 욕을 하겠지만 신씨는 그랬다. 신씨는 "100세 시대로 기대수명이 늘었지만 40~50대면 퇴직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자영업을 시작하지만 대부분 실패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열심히 일한다고 기회가 생기는 사회는 옛말이다. 개인의 생존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된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노후 준비, 육아전쟁, 내집 마련, 취업 등…. 새로운 해를 맞은 설날 아침, 새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모두가 '풍요로움'을 기원했지만 정작 밥상 앞에 둘러앉은 국민들의 얼굴은 밝지만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등 골치 아픈 난제들이 눈앞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아 활기차게 새로운 분야로 도전하기도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저 '먹고사는' 문제로 허덕이고 있었다.
■100세 시대, 어떻게 살아갈까
송민식씨(가명)는 올해 우리 나이로 59세, 환갑을 바라보고 있다. 이 나이에 송씨는 석.박사 학위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평생 해오던 사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학업에 도전하면서 요즘에는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송씨에게도 고민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밥벌이를 할 것이냐'다. 송씨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노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은퇴 뒤 그간 벌어놓은 재산을 쓰면서도 다시 공부를 시작한 송씨는 어쩌면 행복한 경우다. 부산에 사는 강모씨(68)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때때로 밤잠을 설친다. 대기업 이사급으로 퇴직했지만 모아놓은 돈을 그저 쓰기에는 불안하기만 하다. 이것저것 도전해봤지만 제대로 된 '캐시카우'(안정적 수익원)를 만들기에는 체감경기도, 체력도 받쳐주지 못했다. 조씨는 "노후를 병원비, 생활비 등의 고민 없이 살려면 최소 수십억원의 자금을 갖춰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노후에 대한 불안은 비단 노년층만의 고민거리는 아니었다. 40~50대의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이제 막 가정과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에 진입한 20~30대에게도 무겁게 다가왔다.
조모씨(24)는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100세 시대 살아가기'를 꼽았다. 조씨는 "지금은 젊으니 어떻게든 일해서 살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며 "고령화 문제가 이슈가 된 것은 꽤 됐는데도 제대로 된 대책 하나 없다"고 꼬집었다.
■"하루하루 버틸 뿐"
먹고사는 문제는 태초부터 이어진 인류의 숙명과도 같지만 그 고민의 깊이는 날로 깊어지고 있었다. 서른의 한 취업준비생은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이 최대 목표"라고 했다.
정모씨(40대·주부)는 "살림살이가 좋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나빠져서 걱정이다. 시장에 가서 한 번 장을 보면 20만~30만원대를 훌쩍 넘는다"며 "교육비, 생활비, 주거비 등은 고공행진인데 월급은 그대로니, 말 그대로 빚 인생"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 초년병과 중장년층은 취업과 육아, 내집마련이라는 짐이 무겁기만 했다. 양모씨(28)는 "제대로 된 직장 구하기가 너무나 힘들어졌다. 웬만한 직장에 들어가서는 결혼과 출산은 꿈에 불과하다. 죽는 소리가 아니라 이게 현실"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2세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 안모씨(40)는 "대한민국에서 애 키우는 것은 전쟁이다. 아이를 100일 이후부터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했다. 그래선지 감기, 수족구, 장염 등 각종 잔병치레를 할 때마다 죄책감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래도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자영업자 "정말 최악…" 한숨만
자영업자들에게는 어느 해보다 근심.걱정이 가득했다. 내수경기 불황에 따른 소비위축으로 매출은 급감했지만 올해라고 딱히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은평구에서 선술집을 운영하는 40대 김모씨는 "매출이 부진하니까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는 "돈 문제로 인해서 여유가 없다는 게 가장 힘들다"며 "현재 부채가 많아 휴일도 없이 영업을 하고 있는데 그렇다보니까 개인적인 삶의 질이 자꾸 떨어진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경기 오산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50대 구모씨는 "경기가 안 좋아서 걱정이다. 하는 일이 계절을 타는데 겨울에 더 잘 안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충북 청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50대 이모씨는 "정말 최악이다. 힘들다 힘들다 했지만 이 정도로 어려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죽하면 가게 문을 닫는 게 오히려 돈 번다는 얘기까지 나오겠나"라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김씨는 "그나마 유명 체인점 업체들은 현상 유지 정도는 하는 것 같지만 일반 식당은 개점휴업 상태"라며 "해가 갈수록 상황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으니 정부가 나서서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한편 최근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비판 여론도 컸다. 대구에 거주하는 은모씨(70)는 "먹고사는 것도 힘든데, 북한이 미사일까지 쏴서 경기가 더 얼어붙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며 "정부가 좀 더 강경한 대북정책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극단적 양극화다. 임금을 높여 내수가 활성화돼야 경제가 살아난다. 정부도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기보다 대화를 통해 민심을 읽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 정인홍 차장 조윤주 김호연 조지민 윤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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