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의 두 얼굴, 무뎌지는 효과
저금리, 양날의 칼.. 2014년 인하로 201兆 풀려
부동산 등 경기 반짝 반등.. 대출금 해외유출 부작용도
또다른 카드는 없나.. 뼈깎는 구조개혁 수순 임박, 충격적인 경기부양 주문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6일(현지시간) 발간한 이달 첫 호에서 유럽중앙은행(ECB)에 이어 일본은행(BOJ)이 중앙은행 중 5번째로 마이너스 금리 대열에 합류한 것을 두고 '마이너스 변형'이란 글을 통해 "앞으로 헬스클럽 이용료는 3개월치를 한꺼번에 끊는 것보다 매달 내는 게 유리한 시대가 도래했다"고 논평했다. 더 극단적으로는 대출액보다 원리금 상환액이 더 줄어드는 시대가 왔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는 "금융시장을 왜곡하고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비정상적인 선택이다. 다만 성공하면 새 시대가 열리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회의론에도 마이너스 금리라는 전기충격기를 대는 국가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부터 여지를 열어놓고 있다.
금리는 '양날의 칼'이다. 문제는 이 칼이 점점 무뎌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연초부터 국내 경기가 다시 꺼져가면서 결국 한은이 연내 금리를 추가로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시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달 29일 BOJ의 전격적인 마이너스 금리 결정이 타전되자 한국은행 내부가 술렁였다.
한은은 최근 주요국 마이너스 정책금리 운용 사례를 수집하고, 이 거대한 도박판에 대한 세계 경제계의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구로다(BOJ 총재)의 실험이 엔고 촉발로 '3일 천하'로 끝나면서 국내 금리인하 목소리는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앉았지만 경기부양의 비상카드라는 인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최경환 재임시 200조원 풀려도…
지난해까지 약 1년간 전임 최경환 경제팀은 재정확대와 금리인하라는 두 가지 처방을 동시에 진행했다. 결과는 국내총생산(GDP) 기준 연 2.6% 성장이었다.
한은은 이런 상황에 대해 경제학적 표현으로 "통화정책의 파급효과가 제한됐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한은은 각각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1%, 3.0%로 제시했다. 그러나 국제 투자은행(IB)들은 3%대는 고사하고 2%대 초반으로 내려앉을 것이란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은이 지난 2014년 8월부터 2015년 6월까지 기준금리를 2.50%에서 1.50%로 내렸는데 이 기간 은행과 제2금융권 등을 통해 풀려나간 민간의 대출(민간신용)은 약 201조원이다. 이는 과거 한은 금리인하기 때와 비교하면 막대한 수치다.
2000년대 첫 금리인하기(2001년 2~9월, 기준금리 1.25%포인트 인하) 신규 민간신용은 약 53조3000억원이었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타개를 위한 조치로 금리인하를 단행했던 2012년 7월부터 2013년 5월(0.75%포인트 인하)까지 신규 대출금은 77조2000억원이었다. 단순히 두 시기를 놓고 비교하자면 이번엔 세 배 가까이 대출이 풀린 셈이다. 첫 두 번의 금리인하가 이뤄진 2014년 그해 신규 가계대출(58조6368억원)은 산업별 대출금 증가분(55조566억원)을 2년 만에 앞질렀다. 이번 4차례에 걸친 금리인하(2014년 8·10월, 2015년 3·6월)는 지난해 GDP의 0.18%포인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09%포인트 끌어올렸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지난해 성장률은 2.6%다. 이 중 금리인하 효과(0.18%)와 재고분(1.5%)을 제외하면 지난해 성장률은 1.32%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 많던 시설투자 대출금 어디로
지표상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이 있다. 정부가 기업투자 부진을 호소하고 있을 때 시설투자용 대출은 지난 2011년 이래 연평균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여왔다는 점이다.
2014년 신규 시설투자 대출은 44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6.9% 증가했다. 지난해 3·4분기엔 49조9335억원이 증가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17.3%나 늘어났다.
숙명여대 신세돈 교수는 "자영업대출이나 기업의 해외투자로 상당부분 빠져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저금리 수혜가 국내 산업계에 스며들지 않고 일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해 해외투자는 400억달러를 넘어서면서 4년 만에 증가세로 전환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2일 내놓은 '2015년도 해외 직접투자 동향'에 따르면 해외 직접투자 규모(신고 기준)는 402억3000만달러로 전년(350억달러) 대비 15% 증가했다. 2012년(-13.3%), 2013년(-10.1%), 2014년(-1.8%) 3년 연속 감소했다. 금융.보험업(113억7000만달러)을 제외한 약 4분의 3이 제조업(92억4000만달러), 광업(49억4000만달러), 부동산.임대업(48억3000만달러) 등이었다.
■한국 제3의 길 있나
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은 "현재 각국의 마이너스 금리는 경기가 펀더멘털을 회복할 때까지 일종의 시간 벌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결국 마이너스 금리도 안 된다고 판단되면 이르면 몇 개월 후부터 고통스러운 고강도의 구조개혁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학계에서 재정과 통화정책이란 이 전통적 수단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과감한 부양책으로 일종의 충격요법을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 교수는 "'무늬만 재정확대'로는 재정적자만 악화시킬 뿐"이라며 "한은이 경기부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BNP파리바 마크 월튼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이 한 번에 0.5%포인트를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에선 '진짜 위기'에 대비해 금리인하 카드를 아껴야 한다는 시각을 내놓는다. 연세대 김정식 교수는 "국내경기 대응 차원에서 금리를 내릴 수는 있겠지만 가계부채 등 부작용이 있고, 미국·일본 등 준비통화도 아닌 나라로선 금리를 통해 환율을 유도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박소연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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