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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배려의 리더십

[여의나루] 배려의 리더십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한 향토기업이 세간의 입방아에 올라 있다. 성난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으로 매출은 반 토막이 나고, 해당 회사 임직원은 마치 그들이 크나큰 잘못을 저지른 양 비난이 거세다고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던 그 기업이 그토록 비난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는 그 회사의 높으신 분의 약자에 대한 사려 깊지 못한 폭언과 폭행이 원인이었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약자에 대한 갑질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앞으로 사건 당사자의 처리는 사법당국에서 마땅한 조치가 이어지겠지만 해당기업의 피해는 고스란히 종업원들 몫으로 돌아갈 처지에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소한 땅콩 때문에 비행기를 돌리지 않나, 사무실에 신용카드기를 두고 책을 팔지 않나, 온 세상이 나서서 분통을 터트리고 손가락질을 한 지가 언젠데 이런 유의 갑질 논란이 또 일어나니 더욱 기가 찰 노릇이다. 언제까지 그래야 할까.

굳이 약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래도 사회적으로 리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미담 사례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 대기업 회장이 어느 날 이름난 식당으로 손님을 초대했고, 일행은 똑같이 스테이크를 주문했다고 한다. 식사가 거의 끝날 즈음 그 회장이 수행원에게 스테이크를 요리한 주방장을 모셔오라고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수행원은 회장이 스테이크를 절반밖에 먹지 않은 것을 보고 그다음에 일어날 일을 걱정하며 주방장을 데려갔다고 한다. 부름을 받은 주방장은 몹시 긴장한 채 "스테이크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회장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신은 정말 훌륭한 요리사요. 그리고 오늘 스테이크는 맛이 아주 좋았소. 다만 내 나이가 이미 여든이라 입맛이 예전 같지 않다오. 그래서 오늘 반밖에 먹을 수 없었소. 내가 당신을 보자고 한 것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요. 반밖에 먹지 않은 스테이크가 주방으로 들어가면 당신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서 말이오. 나는 단지 내가 스테이크를 남긴 것이 당신의 요리 솜씨가 나빠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오." 이 이야기는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일본 마쓰시타전기(현 파나소닉)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평소 사람을 얼마나 존중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일화 중 하나다. 누구나 다 그래야 하겠지만, 특히 리더 위치에 있거나 경제적 힘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리더나 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는 만큼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공분을 사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된 듯한 폭언·폭행 등, 소위 갑질 논란이 언론 매체에 자주 오르내리지만 사실 이런 갑질이 요 근래에 와서야 일어난 것은 아니다. 필자와 같은 동년배들이 사회생활을 하던 시절에 윗사람들로부터 호통이나 야단(사실은 욕설에 더 가깝기는 하지만)을 얻어먹은 경험을 한두 번 안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 시절에는 그런 호통이 오히려 윗사람의 관심과 애정(?)의 표시라고까지 생각해 그러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랫사람들을 호통이나 강압으로 따르게 하던 권위주의적 사회에서 상호 존중을 우선하는 사회로 바뀌면서 우리 눈에 갑질이 거슬리기 시작했고, 더 이상 눈감아주지 않는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공감을 나타내고 의욕적인 활동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배려와 상대방의 존중이 선행돼야 한다.
그게 바로 배려의 리더십이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일상생활에서 서로서로 상대를 배려하는 노력이 조금씩 모이면 살맛 나는 세상은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믿음을 필자는 갖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갑질 기사가 언론 매체에서 보이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