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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이어 美서도 고액권 지폐 폐지 주장

【 뉴욕·서울=정지원 특파원 정상균 기자】 미국과 유럽에서 고액권 지폐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100달러(약 12만2600원)와 유럽연합(EU) 500유로(약 68만원) 등 고액권 지폐가 발행 취지와는 달리 경제활동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테러집단 등 범죄에 악용된다는 이유에서다. 일부에서는 중앙은행들이 '마이너스 금리'시대에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전포석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마켓워치 등에 따르면 미국의 대표적인 고액권인 100달러, EU의 500유로 지폐를 없애 경제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는 역내 시장에 돈을 더 돌게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빌 클린턴 정부 시절 재무부 장관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고액권 폐지는 탈세와 마약 거래, 테러리스트, 금융범죄자들을 억제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아울러 합법적인 거래를 놓고 볼 때도 과거처럼 고액권의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500유로 지폐를 이용해 수백만 달러를 조성할 때 그 무게는 2.2파운드에 불과하지만 20달러 지폐로 수백만 달러를 만들려면 무게가 50파운드를 넘게 된다. 고액권의 존재로 인해 불법적인 거래가 더 수월해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유로화 발행권이 있는 유럽중앙은행(ECB)도 500유로 지폐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전날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유럽의회 연설에서 "전세계적으로 500유로짜리 지폐가 범죄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강한 확신이 있다"며 고액권 지폐 발행 중단을 시사했다. ECB 한 관계자도 "ECB 내부에선 비공식적으로 폐지 방침을 이미 정했다"고 덧붙였다.

EU가 500유로 지폐의 자금 흐름을 추적 조사했더니, 시중에 유통되기보다 테러·범죄조직의 자금 세탁 등 금융사기, 범죄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500유로 지폐가 유로 지폐 총액의 3분의1이 차지하지만 상당수가 유로존이 아니라 러시아에서 떠돌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시장전문가들은 ECB의 움직임을 마이너스금리를 확산시키기 위한 포석이란 분석도 제기했다. 고액예금자들이 은행이 아닌 자택 등에 현금보관을 어렵게 하기 위한 목적이란 것이다. 이와더불어 예금대신 소비를 선택할 가능성도 높아져 경기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jjung72@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