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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성폭행으로 출산, 남편에게 안알렸어도 혼인취소 안돼"

성폭행을 당해 임신·출산을 한 것이라면 그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해서 혼인무효 사유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K씨(41)가 베트남 국적의 H씨(26)를 상대로 낸 혼인무효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대법원 재판부는 "성폭행을 당해 임신하고 출산한 것은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사생활 비밀의 본질적 부분에 해당한다"면서 "이를 알리지 않았다고 해서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아울러 국제결혼의 경우에도 이런 기준으로 똑같이 적용된다면서 "원심이 H씨의 출산경위나 자녀관계, 양국 간의 다른 혼인풍속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파기환송 판결이유를 설명했다.

K씨는 2012년 4월 결혼중개업자의 소개로 베트남 국적의 H씨와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1년이 채 되지 않아 시아버지부터 성폭행을 당한 H씨는 시아버지를 고소한 뒤 집을 나왔다.

시아버지는 K씨의 친아버지가 아니라 의붓아버지였으며, 적어도 두 차례에 걸쳐 H씨를 강간·강제추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아버지에 대한 형사재판이 진행되던 중 남편 K씨는 가출한 H씨가 베트남에서 다른 남자와 사실혼 관계였고 아들까지 출산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H씨를 상대로 혼인무효 소송을 냈다.

재판과정 H씨는 "13살 무렵 현지 소수민족인 남성에게 납치돼 성폭행을 당했고, 이 때문에 임신과 출산을 했지만, 친정집으로 도망쳐 나와 따로 살았다"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특히 H씨는 "남편이 시아버지로부터 성폭행당한 자신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계부를 유혹했다'고 누명을 뒤집어 씌웠다"며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반소)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혼인일 취소하고 H씨가 남편에게 위자료 800만원을 지급하라"며 K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법원은 "사실혼과 출산 경력은 혼인의사 결정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면서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은 민법상 '사기로 인한 혼인의사표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심 법원은 H씨가 납치와 강간을 당해 출산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출산경력을 고지할 의무를 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 남편 K씨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2심 법원은 H씨의 사정을 감안해 위자료는 300만원으로 감액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1·2심과는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면서, H씨는 오히려 남편으로부터 위자료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ohngbear@fnnews.com 장용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