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소방서 잠원119안전센터 응급구조팀
1분1초 다투는 응급구조.. 얌체환자·취객 만나면 씁쓸.. 밤을 잊은 구조활동
지난 1월 27일 새벽 2시께 서울 서초소방서 잠원119안전센터 응급구조팀 대원들이 환자 이송을 마친 뒤 병원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정춘교 팀장, 성정은 반장, 강규훈 반장.
# "출동, 출동, 상황발생, 긴급 출동…"
고요했던 서울 서초소방서 잠원119안전센터에 갑자기 요란한 사이렌이 울려퍼진다. 긴급 상황이라는 뜻이다. 응급구조팀은 '골든 타임'을 사수하기 위해 재빨리 응급차에 몸을 싣는다. 응급차가 차선을 바꿔가며 갈지(之)자로 달리고 있는 중에도 응급대원들은 환자 정보를 확인하며 처치 계획을 세운다. 5분여 간의 출동 시간이 대원들에게도, 환자에게도 가장 중요한 '골든 타임'이다.
# "응급구조사는 만능 해결사"
2016년 1월 21일 오후 2시50분께 이동하는 응급차 안에서 응급구조팀 응급구조사 강규훈 반장(34.소방교)을 만났다. 그는 환자 정보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학에서 응급구조에 대해 공부한지도 이제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는 응급 상황이 항상 긴장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응급 환자를 만날지 예측할 수 없어서다. 긴급 상황 때마다 다양한 환자에 적합한 응급처치를 해야 하는 응급구조사는 그야말로 '만능 해결사'다.
# "구조는 완벽한 팀플레이"
구조팀은 3명의 응급구조사 자격증이 있는 구급 대원으로 구성돼 있다. 강 반장을 포함해 신속한 후송을 위해 운전대를 잡는 정춘교 팀장(47·소방장), 환자 정보를 파악하고 응급처치를 하는 성정은 반장(35·소방교)이 그 주인공이다. 출동부터 시작해 구조 활동은 철저한 팀플레이를 통해 이뤄진다. 정 팀장이 현장으로 안전하고 신속하게 응급차를 운전하면 성 반장과 강 반장은 환자 정보를 확인하고 구조 계획을 세운다. 응급차가 도착한 후 환자를 이송하는 짧은 시간 동안 이뤄지는 이들의 업무 협력은 환자에게 새생명을 불어 넣는다.
지난 1월 21일 오후 3시 30분께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 아파트에서 한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세제를 복용해 잠원119안전센터 응급구조팀이 즉시 출동했다. 구조팀 강규훈 반장이 환자 상태를 확인하며 증상을 묻고 있다.
■ 만능 해결사, 응급 구조사
'사건 발생1 - 1월 21일 오후 3시30분. 휴가 나온 군인 세제 복용 자살기도'
앞선 환자를 병원에 이송하고 복귀할 무렵 다시 출동 지시가 떨어졌다. 대원들은 5분 만에 서초구 잠원동 A아파트 현장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구조팀의 본격적인 '치료'와 '조사' 그리고 '이송'이 시작된다.
현장에는 세제를 복용한 김모씨(21)가 거품을 토하며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 옆에는 신고자인 어머니가 횡설수설하며 울고 있었다. 집 안에는 환자가 구토한 흔적, 세제를 탄 물컵 등이 확인됐다. 강 반장은 먼저 환자의 의식, 호흡 등을 확인했다.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환자의 '치료'가 가장 우선이기 때문이다 .
응급구조사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응급환자에 대해 상담.구조 및 이송 업무 뿐 아니라 기도확보, 심폐소생술, 약물 투여 등의 응급처치를 할 수 있다.
지난 한해 동안 구급대원은 환자 33만5470명에게 85만4800건의 응급처치술을 시행할 정도로 응급 처치는 구조사의 기본업무 중 하나다.
강 반장은 김씨의 의식과 호흡이 정상인 것을 확인하고 그에게 증상을 물었다. 김씨는 대원들에게 세제를 복용했다고 털어놨고 성 반장은 즉시 환자가 복용한 세제를 찾아내 인체에 무해한 종류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병원으로 가기 전 강 반장은 사건 발생 시간과 복용한 세제 양, 구토 횟수 등 사건의 종합적인 발생 경위를 환자 어머니에게 묻는 등 사건 전반을 '조사'했다. 어머니가 외출한 시간과 돌아온 시간을 고려해 환자의 세제 복용 시간을 유추하고 복용량 등을 파악한 것이다.
강 반장은 "사건 발생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은 환자를 맡은 의사에게 전달되고 응급 환자 치료에 도움을 줄 때가 많다"며 "주변 사람의 경우 당황해서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최대한 빨리 관련 사실을 알아내려 한다"고 말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강 반장은 김씨를 응급차에 눕혔고 정 팀장은 인근의 A대학 병원으로 신속히 차를 몰았다. 그동안 대원들은 응급차 내부 응급 의료 도구를 이용해 김씨의 혈압과, 맥박, 체온 등을 측정하고 산소포화도를 검사했다.
또 병원으로 이송되는 중간 강 반장은 구조대의 구조구급활동시스템에 환자의 인적사항과 증상, 사건 발생 경위 등을 입력하고 있었다. 이 내용은 향후 의사에게 전달돼 환자 치료를 위한 정보로 사용된다. 3시 50분께 대원들은 김씨를 무사히 병원에 이송해 의사에게 환자의 상태 전반을 전달했다.
지난 1월 21일 오후 3시께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 아파트에서 구급대원들이 70대 남성을 응급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이 환자는 응급 상황이라고 할만한 특이점이 없어 사설 응급구조차량 등을 이용해야 한다. 이같은 경우 구급대원 판단에 따라 이송거부 혹은 과태료 처분을 결정할 수 있다.
■얌체 이용객에 취객까지…
'사건발생2-1월 21일 오후 3시. 병원 예약까지 마친 얌체 비응급 환자'
"환자가 병원까지 다 예약한 상태입니다. 비응급환자인데 병원을 가기 위해 구급차를 이용하는 경우죠."
구조팀은 출동 신고가 들어온 서초구 잠원동 A아파트로 긴급히 이동한 뒤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번에도 비응급환자면서 구급대를 이용한 적이 있는 소위 '얌체 이용객'이었기 때문이다. 응급차가 '구급 택시'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응급차 내부에는 외상세트, 기관 삽관 튜브세트, 분만세트, 화상세트, 기타소독, 수액세트 등 다양한 응급 처치 용품이 있지만 이같은 비응급환자에게는 무용지물이다.
현장에 도착하자 70대 환자 오모씨는 뇌경색으로 인해 거동이 어려웠고 강 반장과 성 반장이 힘껏 들어 들것에 실었다. 환자의 보호자는 이미 예약돼 있는 A병원으로 가달라고 했다.
해당 보호자는 "최근 건강이 또 안좋아져 병원에 다시 입원해 검사를 해야한다고 했다"며 "웬만하면 저기(병원 응급차)로 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아예 움직이시지 못해서"라고 말 끝을 흐렸다. 이 환자는 무사히 응급실이 아닌 '일반 병동'으로 이송됐다.
강 반장은 "이런 출동을 나가면 긴급하게 발생하는 응급환자를 신속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토로했다.
국민안전처 '2014년 구급활동 현황'에 따르면 전체 구급출동(238만9211건)의 10건 중 1건은 비정상출동이었다. 오인(5만1779건), 허위(1557건), 출동 중 취소(21만6768건) 등 비 정상출동은 28만5243건(11.9%)에 달했다. 비응급 얌체 환자의 경우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구급대원이 판단해 '이송 거부' 혹은 '과태료 부과'를 할 수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판단이 힘든 부분도 있다.
강 반장은 "긴급 환자인지 아닌지 대략 알 수 있지만 갑자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송하는 경우가 많다"며 "또 야간 근무의 경우 취객들 이송이 많은데 이송 거부나 과태료 부과를 한적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국민안전처는 현재 1급 응급구조사 등 전문자격증을 갖춘 119구급대원을 계속 확충하면서 비응급 이송은 줄이고 응급환자 이송을 늘리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새벽 2시께 모두가 잠든 새벽녘에도 서울 서초소방서 잠원119안전센터는 대원들이 구조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구조대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사명감을 바탕으로 매일 같이 소방서의 불을 환히 밝힌다.
■힘든 일, 사명감으로 승화시킨다
'사건 발생3- 1월 28일 새벽 2시,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119잠원안전센터'
서초소방서 119잠원센터는 대원들이 주간, 야간 돌아가며 근무하고 있다.
구조팀에게 새벽 근무는 더 없이 고되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구조 요청은 끊임 없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6시부터 갑자기 쓰러져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부터 길거리에서 응급차를 붙잡고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며 쉴틈 없이 구조 활동을 벌이고 나니 벌써 새벽2시가 가까웠다.
센터로 들어오는 대원들의 모습은 한 없이 지쳐 보였다. 새벽 2시께 잠깐의 쉬는 시간 동안 겉으로 보면 듬직했던 대원들을 자세히 보니 하나같이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 팀장을 포함해 아직 30대인 강 반장과 성 반장 역시 허리, 어깨 통증 등 잔병을 달고 산다. 또 부상 환자, 사망 환자 등을 매번 상대해야 하니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전국 소방직 공무원 8525명(여성 5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건강이 나쁜 편이거나 매우 나쁘다'고 응답한 소방대원은 10.2%에 달했다. 응답한 소방대원들이 겪는 청력문제(24.8%), 우울 또는 불안장애(19.4%), 불면증 또는 수면장애(43.2%)도 심각한 수준이었으며 또 대원의 64.9%는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강 반장은 "응급 환자를 상대하는만큼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도 당연히 힘든 직업"이라며 "몸이 아프고 환자가 꿈에 나와 잠을 설친적도 많다"고 털어놨다.
힘들어도 대원들은 서로를 믿고 사명감을 바탕으로 매일 같이 구조활동을 이어간다 정 팀장은 "어려운 점이 많지만 팀원들과 함께 생명을 구할 때면 구조사로서의 사명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강 반장 역시 "심폐소생술로 멈췄던 심장을 뛰게 하는 경험을 하다 보면 이 직업에 어느덧 빠져들게 된다"며 "힘든 순간보다 가슴 뛴 순간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성 반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방 교육쪽 분야에서 일했다.
여성 응급구조사로서 구급대원으로 일하는게 힘들기도 했지만 다양한 활동을 경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온 그는 지금 누구보다도 구급대 활동에 자부심이 있는 응급구조사다. 그는 "다시 구급대원으로 출동하고 난 다음 드디어 내게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기뻐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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