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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룰라의 몰락

브라질 경제가 추락하고 있다. 중국의 성장률 둔화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자 맨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성장률이 마이너스(-)3.8%를 기록했다. 브라질 국민은 1990년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그해 성장률이 -4%까지 떨어지자 브라질 정부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지난해의 성장률은 그때 이후 가장 저조한 수준이다.

브라질 경제와 함께 추락하는 게 또 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다. 그는 브라질 헌정 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국민적인 존경을 받아온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부패한 정치인으로 사법당국의 추적을 받는 신세가 됐다. 그는 지난 4일 브라질 사법당국에 강제 구인돼 조사를 받았다. 그의 자택과 연구소도 압수수색을 당했다. 국영 에너지회사인 페트로브라스의 대형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부동산 편법취득, 대선 불법자금 수수, 대형 건설업체에 대한 금융지원 영향력 행사 등의 의혹도 제기된다.

룰라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8년간 집권하며 브라질의 고도성장 신화를 이끈 지도자로 평가된다. 그의 재임 기간 브라질 경제는 전례 없는 고도성장을 누렸다. 세계 원자재 시장의 호황도 있었지만 좌파 정부로는 드물게 시장경제 원칙을 지켜 장기호황을 가능케 했다. 룰라의 인생 역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성공신화였다. 그는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자동차공장 선반공으로 일했으며 금속노조위원장을 지내는 등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집권에 성공한 후 예상을 깨고 시장경제를 존중하는 정책을 펼쳐 브라질 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2010년 퇴임 직전에 그의 지지율은 무려 87%까지 치솟았다. 퇴임 후에도 정치적 후계자인 지우마 호세프 현 대통령의 당선과 재선을 이끌면서 막후 실력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브라질 경제는 1990년 이후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기업 도산으로 실업자가 급증하고 물가가 치솟고 있다. 그에게 환호했던 많은 지자자들도 이제는 야유를 보내고 있다.
현지 여론조사에 따르면 2018년 대선 재출마를 전제로 한 그의 예상득표율은 22%로 야권 예상후보에 비해 10%포인트나 뒤졌다. 그의 후계자인 호세프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놓였고, 브라질 재계는 그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정치인의 인기는 스쳐 지나가는 바람인가. 참으로 권력무상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