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 4명 중 1명은 60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 후 안락한 노후 대신 별다른 수입 없이 빚에 쫓기다 파산이란 벼랑 끝 위기에 내몰리는 '노후파산'이 일본처럼 한국에서도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 초과) 진입을 앞에 둔 상황에서 연금급여 외에 노인층의 소득을 높이고 파산을 방지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수명 증가·노후대비 실패로 노후파산 증가세
25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올 1∼2월 법원이 파산 선고를 내린 1727명 가운데 60대 이상은 428명이었다. 전체의 24.8%다. 최대 경제활동 계층인 50대(37.2%)보다는 적지만 40대(28.2%)와 비슷하고 30대(8.9%)를 웃도는 수치다.
파산자 성별은 남자의 26%, 여자의 24%가 60대 이상이었다. 법원은 빚을 져도 근로 능력이 있어 벌어서 갚을 수 있는 젊은층과 달리 노인층은 소득이 있어도 생계비 등을 제외하면 채무를 변제할 수 있는 수준이 못 돼 파산에 이르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특히 파산을 하는 노년층이 갈수록 많아지는 추세라고 전했다. 노년층 파산 비중이 이처럼 큰 것은 평균수명 증가로 은퇴 후 비경제활동 시간이 늘어나고 과도한 자녀 사교육비 등으로 노후 대비에 실패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풀이된다.
■10년뒤 초고령사회..노인빈곤 '경고등'
2015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중위소득 50% 미만의 비율)은 4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OECD 평균(12.6%)에 비해서도 4배나 높은 수치로, 65세 이상 노인 절반이 빈곤상태에 처한 셈이다. 한국은 오는 2026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돼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노인 빈곤율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노인의 28.9%가 경제활동에 뛰어들어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지만 3명 중 1명이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등 일자리 질은 낮은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빚의 굴레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내 노인 대부분은 노후생활을 위해 국민연금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이마저 상황은 녹록치 않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소득대체율(연금 받을 때 금액이 가입 기간 평균소득과 대비해 어느 정도의 비율인지를 나타낸 지표)이 현저히 낮아지면서 현재의 국민연금 급여 수준과 수급자격 여건을 그대로 두고서는 40~50년 후에도 빈곤완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을 내놨다. 40년 가입 기준으로 198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 70%였던 소득대체율이 2차례에 걸친 제도개편으로 지난해 46.5%를 기록한 데 이어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40%까지 떨어지게 설계돼 노인 상당수가 턱없이 적은 연금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양질의 노인일자리 활성화와 서민금융 정책 등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것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저소득층 노인의 소득을 높이고 낮은 금리의 서민금융과 선제적 신용회복 제도로 노후파산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용어설명/노후파산=의식주 모든 면에서 자립능력을 상실한 노인의 삶을 지칭한다. 2014년 일본 공영방송사 NHK가 평균 수명이 길어지는 바람에 수십년간 성실하게 일했던 중산층이 노후에 갑자기 빈곤 계층으로 전락하는 일본 사회의 현상을 방송으로 제작하면서 만든 신조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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