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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사조 유대위가 말이 돼?" "드라마는 어차피 허구잖아"

TV 드라마 '현실성' 갖춰야 하나
"해도 너무하네" 총 여러발 맞고도 살아남은 남자 주인공
그냥 받아들이라고요?.. 극 자체의 몰입 방해
"창작의 자유잖아" 자꾸 현실성 운운하면 다큐멘터리를 봐야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 "형사님, 인주 사건 그만하세요. 그 사건 때문에 형사님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상관없습니다. 대한민국 강력계 형사가 그딴 거 겁낼 것 같습니까?"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시그널'은 현재를 사는 프로파일러 박해영(이제훈)과 과거의 형사 이재한(조진웅)이 무전기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대화를 나누며 오래된 미제 사건을 하나씩 풀어가는 내용이다. 이 형사가 무전기에 대고 "그래도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라고 일침을 놓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의 공감을 샀다.

#. 특전사 유시진 대위(송중기)가 납치된 강모연(송혜교) 구출작전을 서두르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이한수(곽인준)는 "국가적 차원의 일이니 강모연을 구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한다. 이에 유 대위는 "개인의 죽음에 무감각한 국가라면 문제가 좀 생기면 어때. 당신 조국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난 내 조국을 지키겠다"고 말한 뒤 사령관으로부터 3시간짜리 비공식 휴가를 받아 강모연을 구하기 위해 떠난다. 최근 아시아 전역을 휩쓸고 있는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한 장면이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사조 유대위가 말이 돼?" "드라마는 어차피 허구잖아"
tvN 드라마 '시그널' 사진=시그널 공식홈페이지

드라마가 갖는 '현실성'은 시청자로 하여금 드라마를 선택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앞에서 언급한 두 드라마 역시 시청자로부터 뜨겁게 사랑받는 드라마란 점에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현실성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다른 평가를 받는다.

해외 파병부대에서 펼쳐지는 군인과 구호현장에 파견된 의사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있을 법하다. 오히려 '현실을 보여준다'고 호평받은 시그널의 설정(고장난 무전기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이 더 비현실적이다.

두 드라마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순 없어도 태양의 후예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분위기다. 총상을 입은 피투성이 유 대위가 금세 일어나 멀쩡히 생활하는 장면은 '유시진 불사조설'을 낳기도 했다. 드라마의 폭발적 인기 탓이기도 하지만 태양의 후예는 실제로 작품 곳곳에 판타지적 요소를 배치해 극의 재미를 배가한다.

현실성은 드라마의 필수요소가 돼야 할까. 이를 둘러싸고 '드라마이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라는 목소리와 '현실을 잘못 인식할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가 공존한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사조 유대위가 말이 돼?" "드라마는 어차피 허구잖아"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 사진=태양의후예 SNS

■"비현실적이어서 재밌다"

창작의 자유를 존중하자는 쪽은 드라마에 엄격하게 현실성이란 잣대를 들이대면 극적 효과가 반감된다고 입을 모은다.

유 대위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향해 반말로 소신을 표현할 때 시청자들이 지극히 '판타지 같았다'고 여기면서도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까닭은 현실성을 덜어내는 대신 극적 효과를 키운 덕분이다. 대리만족을 통해 일상을 위로한 셈이다.

판타지적 요소를 빼고 보면 일단 애인을 구하러 홀로 떠난 대위가 1대 다수로 싸워 멀쩡하게 살아남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설령 모든 운이 따라 그가 멋지게 귀환하더라도, 명령을 어기고 독자적으로 행동했던 그를 국가는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

고장난 무전기가 갑자기 작동하기 시작해 20년이란 시간을 사이에 둔 두 명의 형사를 연결하는 일, 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눠가며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일 역시 현실에선 결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토록 판타지적 설정이 아니었다면 태양의 후예나 시그널 모두 사랑받는 드라마가 될 수 없었을 지 모른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한 인터뷰에서 "사실 이 드라마(태양의 후예)는 자꾸 현실성을 얘기하고 비교하다 보면 재미를 찾기가 어려운 드라마"라며 "그저 잠시 현실을 잊고 빠져드는 판타지라고 생각하는 편이 맞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실성이란 딜레마

너무 비현실적어서 몰입이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악인이 승승장구하는 걸 보며 삶의 희망을 내려놓고, 드라마 속 화려한 삶이 내 삶과 너무 달라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실제로 태양의 후예 속 특전사가 부각되는 사이 현실에선 특전사 보험사기 파문이 불거져 나왔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유 대위가 살아남을 때, '비리 방탄복'을 보급받은 우리 군인들은 행복한 결말 대신 슬픈 결말을 예약해 두고 있었다.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도 드라마의 현실성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이유다.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은 이순신이란 이름의 주인공 행실이 역사 속 위인의 이미지를 해친다 하여 도마에 오르내렸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 남자'란 드라마 제목은 오탈자가 바른 표기로 잘못 인식될 수 있다 해 '착한 남자'로 정정됐다.


이 가운데 드라마 속 세부묘사가 강조되고 현실성이 부각될수록 모방범죄 우려 또한 커지는 점은 딜레마다. 대충 보여주자니 시청자를 몰입시키기 어렵고, 자세히 보여주자니 따라 하게 만드는 위험이 생기는 것.

다만 이를 이유로 드라마에 책임을 크게 지우기보다는 시청자의 가치관을 바로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는 조언이다.

최진혁 경찰대 교수는 "(드라마 등을 보고 모방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원래 범죄성을 가졌거나 그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평소 충동이 잠재하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라면서 "모든 사람이 범죄 드라마를 보고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july20@fnnews.com 김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