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와 구토,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이 보인 최모씨 급성신부전 진단을 받았다. 평소 건강하던 그가 급성신부전을 일으킬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문진(問診)에서 원인이 밝혀졌다.
그는 이틀 전 몸에 좋다는 지인의 권유로 잉어 쓸개 날 것을 술과 함께 먹었다고 했다. 길이 1m쯤 되는 대형 잉어의 쓸개는 맥주잔을 절반쯤 채울 정도로 컸다고 한다.
이모씨는 붕어를 달여 먹고 급성신부전이 발생한 사례. 20cm쯤 되는 붕어 다섯 마리를 푹 고아 다 먹고 난 뒤 심한 설사와 혈뇨 증상을 보여 병원을 찾았다. 조리할 때 내장은 뺐으나 쓸개는 넣었다.
웅담, 우황 등 쓸개의 효능에 대한 기대 때문일까. 최근 잉어, 붕어 등 민물고기의 쓸개를 먹고 급성신부전을 일으키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물고기(초어)의 쓸개가 급성신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은 1970년대 중반 대만, 태국 연구팀 등에 의해 국제학술지에 처음 보고됐다.
국내에서는 지난 1985년 잉어 쓸개를 먹고 급성신부전을 일으킨 5건에 대한 서울대병원 연구팀의 첫 보고가 나온 뒤 대한신장학회지에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경우나 상대적으로 가벼운 증상까지 포함하면 쓸개 독성 사례는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민물고기 쓸개의 독성은 △콩팥에 대한 직접적인 독성 △구토와 설사 등 위장관 장애 △극단적인 소변 감소 증상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민물고기의 쓸개즙이 콩팥이나 간에 독성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학설이 있다. 잉어 등의 쓸개즙 알코올인 '사이프리놀(Cyprinol)', 담즙산 '치노데옥시콜릭산(Chenodeoxycholic acid)' 등이 독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물고기 쓸개즙의 독성 물질은 열에 안정화돼 있어 끓이거나 달여도 독성이 발생할 수 있다.
포유류는 쓸개즙이 소화를 돕는 작용을 한 뒤 장(腸)에서 재흡수되므로, 쓸개즙 속에 독성 물질이 적은 쪽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민물고기 쓸개즙은 장에서 재흡수되지 않고 대변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독성 물질이 많다. 섭취한 독성물질은 콩팥에서 소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농축돼 콩팥 조직을 손상시킨다.
잉어, 붕어 등 민물고기의 쓸개나 쓸개가 들어간 음식을 먹은 뒤 구토, 설사, 복통, 혈뇨, 극심한 소변감소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을 찾아 콩팥이나 간 손상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민물고기 쓸개를 먹고 생긴 급성신부전은 전격성 간 부전을 동반하지 않으면 대부분 3~4주 안에 약물투여, 혈액 투석 등으로 치료된다.
쓸개는 전통적으로 야맹증 치료나 이뇨제, 보신 등을 위해 사용돼왔으나 한의학 서적인 동의보감, 본초강목 등에도 남용하면 유해하다는 점이 언급돼 있다.
김성권 서울K내과 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은 "식품으로 쓸개를 조금 먹는 것은 무방하겠지만 큰 물고기의 쓸개를 통째로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특히 콩팥병이 있는 사람들은 물고기 쓸개는 먹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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