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오풍연 칼럼] 친박의 자해성 몽니

전국위 정족수 미달로 못 열려.. 김용태 "정당민주주의 죽었다"
'친노 패거리'보다 더한 인상

[오풍연 칼럼] 친박의 자해성 몽니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는 더 큰 흉이 있으면서 도리어 남의 작은 허물을 본다는 뜻이다.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이럴 때 쓴다.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들으니 말이다. 지금 새누리당을 보면 꼭 이런 형국이다. 이른바 친박(親朴)이라는 무리들이 도를 넘어선 짓을 하고 있다. 양심도, 염치도 없다. 패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016년 5월 17일은 새누리당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정당 역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상임전국위 및 전국위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았다. 친박의 불참으로 성원이 안돼 개의가 지연됐다. 상임전국위 위원 52명 중 16명만 참석했다. 친박이 조직적으로 불참했던 것이다. "이건 정당이 아니라 패거리 집단이에요. 동네 양아치들도 아무 명분 없이 이렇게는 안할 겁니다." 상임전국위 임시의장을 맡기로 했던 비박(非朴)계 정두언 의원이 격분하면서 쏟아낸 말이다.

더 기다려도 가망이 없자 정진석 원내대표는 자리를 떴다. 홍문표 사무총장 대행이 전국위 무산을 선언했다. 홍 총장 대행은 "성원이 되지 않아 회의를 이루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을 형용할 수 없다. 오늘 회의는 무산된 것으로 선언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용태 혁신위원장이 사퇴 기자회견을 했다. 보이콧당한 마당에 자리를 지킬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 원내대표 측은 "(친박의) 자폭 테러"라고 비난했다. 김 위원장도 "오늘 새누리당 정당민주주의는 죽었다. 그들에게 무릎 꿇을 수 없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6일 이 같은 조짐이 감지되긴 했다. 그래도 정족수 미달로 회의 자체가 열리지 못할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다. 친박계 초.재선 의원 및 당선인 20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김 혁신위원장과 이혜훈.김영우 비대위원은 안된다고 문제 삼았다. 비박, 친유승민, 친김무성계라 안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들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짐작은 간다. 친박 원유철.홍문종.조원진 의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가장 타격을 크게 입은 사람은 정 원내대표다. 친박이 정 원내대표를 뽑아놓고 흔든 격이다. 정 원내대표의 독단을 혼내주려고 집단행동을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겸임하는 안건이 통과되지 못한 상황에서 전대를 관리할 비대위 구성도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 일각에선 정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비토설이 나온다. 그러나 정 원내대표는 18일 "나는 새누리당 책임자"라고 비토설을 일축했다. 정면대응하겠다는 얘기다.

친박계가 상임전국위·전국위마저 무산시키는 실력행사에 돌입하자 분당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한 비박계 3선 의원은 "이 지경까지 왔는데 (친박계와) 한지붕 아래 같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정두언 의원도 "이런 패거리집단에 내가 있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해야겠다"고 말해 탈당 가능성을 시사했다. 새누리당 당선인 122명 가운데 친박계는 70여명 된다. 따라서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대로 당을 끌고갈 수 있다. 이번 사단의 발단 원인이기도 하다.

친박계는 지난 4.13 총선에서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런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여론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당권까지 거머쥐려 하고 있다. 마이웨이를 하겠다는 의도다.
친박도 패거리 문화로 지탄받는 친노(親盧)와 다를 게 없다. 요즘은 친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고도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는가. 얼굴이 두껍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친박은 총선 민심을 거스르지 말라.

poongyeon@fnnews.com 오풍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