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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고준위 방폐장, 정치바람을 경계한다

핵 쓰레기장 한시가 급해
탈원전과 연계 전략 안돼

정부가 25일 사용후핵연료 처리방안을 내놨다. 향후 12년에 걸쳐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부지를 확보한 뒤 2035년까지 중간저장시설, 2053년께 영구처분시설을 짓겠다는 게 골자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전을 가동하고 남은 찌꺼기다. 워낙 위험한 물질이라 땅속 깊숙한 곳에 콘크리트 벽을 쌓아 단단히 묻어야 한다. 지금은 원전 내부 임시저장소에, 그야말로 임시로 보관 중이다. 하지만 오는 2019년부터 경북 경주의 월성원전을 시작으로 임시저장소가 꽉 찬다. 땅을 찾고 건물을 짓는 기간을 고려할 때 고준위 방폐장 건립은 당장 시작해도 늦은 편이다.

문제는 땅이다. 대한민국 어느 곳도 원전을 반기지 않는다. 더구나 이번엔 핵 쓰레기장이다. 1978년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가 가동에 들어갔다. 5년 뒤인 1983년 방폐장 이야기가 처음 나왔다. 하지만 후보지로 거론된 곳마다 반대여론으로 들끓었다. 1990년 굴업도, 1994년 안면도, 2004년 부안에서 격렬한 시위가 잇따랐다. 결국 2005년 노무현정부는 고준위 방폐장과 중저준위 방폐장을 분리해서 짓기로 방침을 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이 작년에 문을 열었다. 중저준위는 원전 근로자들이 쓰던 장갑, 옷, 그릇 등을 보관한다. 폐연료봉, 즉 고준위는 이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그만큼 부지 선정은 가시밭길이다.

정부는 공모를 거쳐 주민 의사를 확인한 뒤 심층조사를 거쳐 부지를 고른다는 복안이다. 이는 당연한 절차다. 더 중요한 것은 해당 지역에 제공할 인센티브다. 경주에 중저준위 방폐장을 지을 때도 정부는 상당한 혜택을 약속했다. 원전을 관리.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를 경주로 옮긴 것도 그 일환이다. 고준위 방폐장은 후보 신청지역에 더 큰 혜택을 제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혐오시설을 지을 때는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진짜 걱정은 정치권이다.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탈원전을 지향한다. 고준위 방폐장 건립을 용인하는 대가로 신규 원전 포기를 요구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고준위방폐물특별법도 난관이 예상된다. 방폐장과 탈원전을 연계하는 전략은 국가적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새 원전을 추가로 짓든 말든 임시저장 중인 폐연료봉은 하루속히 처리해야 한다.
파리기후협약 체결을 계기로 오는 2020년부터는 개도국도 온실가스 감축에 의무적으로 동참하게 돼 있다. 원자력은 가장 깨끗한 에너지원이다. 방폐장, 나아가 원전정책은 좀 더 넓은 눈으로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