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과 나무젓가락, 손때 묻은 작업공구들과 장갑. 5월 28일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 중 숨진 19세 청년 김모씨의 가방 속에서 나온 소지품이다. 고된 업무에 시달리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 청년 부모의 심정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청년은 사고 순간 얼마나 겁에 질리고 아팠겠는가. 이번 사고를 보면서 눈시울을 붉힌 시민이 많다. 남 얘기 같지 않아서다.
사고 다음 날이 청년의 생일이었다고 한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슬픔은 더욱 커졌다.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그를 추모하는 글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사고 현장에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추모공간을 마련해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미안해! 너무 힘들었지? 이제 편히 잠들어. 나중에 우리 편히 만나자!" 청년이 숨진 사고 현장에 노란색 쪽지가 붙어 있다.
청년은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살인적인 격무를 묵묵히 감내해 왔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꽃이 피기도 전에 진 것이다. 어린 노동자의 죽음 앞에 숙연해질 뿐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는 5월 31일 오후 사고 현장을 방문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도 이날 20대 국회 첫 현장방문 일정으로 구의역 사고 현장을 찾았다.
구의역 사고는 여실히 드러난 인재(人災)다. 수리를 담당한 외주업체는 2인 1조라는 매뉴얼을 지키기 어려운 인력부족 상황에서도 청년 홀로 작업을 하도록 했다. 사고 개연성이 컸던 셈이다.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의 사망사고는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2014년 서울 독산역, 2015년 강남역에서도 일어났다. 그때마다 근본적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하철 1~4호선 운영 주체인 서울메트로는 경제성과 효율성을 앞세워 현실과는 먼 탁상 매뉴얼을 만들기에 급급했다.
지난해 9월 싸늘히 식은 몸으로 터키 해변에 떠밀려온 세 살배기 아이의 사진 한 장이 심금을 울린 적이 있다. 아일란 쿠르디라는 이 아이는 시리아 난민으로 이슬람국가(IS)와 쿠르드족 민병대 간의 치열한 교전을 피해 부모와 함께 유럽으로 가려다 배가 뒤집혀 목숨을 잃었다.
그때도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며 전 세계인이 눈시울을 적셨다. 스크린도어 수리 중에 발생한 청년의 죽음 역시 안타까움으로 그쳐선 안 된다. 청년도 하늘나라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게다.
poongyeon@fnnews.com 오풍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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