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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우리는 왜 무시당하는가

[노동일 칼럼] 우리는 왜 무시당하는가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후에 남이 업신여긴다. 집안은 반드시 스스로 망가뜨린 후에 남이 망가뜨린다.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친 후에 남이 친다."('맹자' 이루 편). 요즘처럼 이 말이 절실하게 들리는 때가 없다. 우리가 무시당하는 숱한 사례를 접하며 그 원인이 우리가 스스로를 무시한 탓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옥시 측이 피해자들을 만나 합의를 시도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로 사망 시 최고 1억5000만원까지 제시했다는 소식이다. 언론들은 피해자의 분노를 전한다. 물론 옥시는 질타받아 마땅하다. 제대로 된 사과나 진상규명 의지 없이 면피에 급급한 자세가 여전하다. 제시된 위자료도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위자료의 근거다. "한국 법원이 정한 교통사고 사망 위자료보다 많다"고 설명한다. 피해자들이 소송을 해도 그 이상 받을 수 없다는 계산인 것이다.

알려진 대로 우리는 이른바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재산상 손해의 경우 실제 손해액만 배상하도록 한다.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도 턱없이 짜다. 사망사건에도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는 몇 천만원 혹은 1억원 정도가 고작이다. 최고 1억5000만원의 위자료는 따라서 법률적 검토를 거친 제안인 셈이다. 옥시로서는 굳이 우리나라에서 그 이상의 위자료를 부담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업신여기는 나라의 국민을 외국계 기업이 존중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점입가경인 폭스바겐 사태도 마찬가지다. 폭스바겐은 연비조작 스캔들과 관련, 162억유로(약 21조3900억원)의 비용을 책정하고 미국에선 100억달러(약 1조1700억원)를 우선 배상했다. 유럽에서도 대규모 리콜을 서둘러 실행했다. 우리나라에서와는 너무도 다르다. 믿는 구석은 있다. 규정 미비로 어쩔 수 없다며 팔짱을 끼고 있는 우리 정부의 모습이다. 뒤늦게 공정위가 최고 880억원 정도의 과징금을 물리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그런 과징금 쇼가 한두 번인가. '공정위 수백억원대 과징금 부과' 기사가 나온 후 법원에서 과징금을 대폭 낮추는 판결이 나오고 결국 그대로 종결되는 경우는 비일비재다. 공정위가 남양유업에 부과한 124억원의 과징금이 법원 판결을 거쳐 5억원으로 낙착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거액의 수임료를 챙긴 대형 로펌 좋은 일만 시킨 것이다. 공정위의 과징금 운운은 폭스바겐 아니라 어떤 기업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미국에서 들려온 소식들은 대조적이다. 미국 법원은 최근 존슨앤존슨의 베이비파우더가 난소암을 유발할 수 있다며 60대 여성에게 620억원이 넘는 거액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의 성관계 영상을 공개한 '고커(Gawker)' 미디어의 파산 소식도 있다. 호건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고커는 전가의 보도인 언론자유를 내세웠지만 무려 1억4000만달러(1653억원)의 배상 판결이 나왔다. 고커는 결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으며 회사를 경매에 부쳤다.

이를 두고 미국이 기업하기 나쁜 나라라거나 언론자유가 침해됐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기업 활동도 중요하고 언론자유도 소중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기업을 적대시하자거나 기업을 더 옥좨야 한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을 때 결국 그 손해는 부메랑으로 우리들에게 돌아온다는 말이다. 기업도 결국 그 실체는 사람이 아닌가. 사람을 업신여기는 나라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는 신화는 사실이 아니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