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이준규 신임 주일대사를 만나다
국익에 도움 된다면 일본인들에게 '친일파'로 불려도 좋아
과거사 부담 일본이 져야하지만 한·일관계 악영향은 안돼
통화스와프는 신중히 검토.. 청년들 日 취업에 도움줄 것
이준규 신임 주일대사는 한·일 관계가 발전적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상호 이해와 배려라고 강조했다. 이 대사는 일본 내의 혐한 감정에 대해 '좋아하는 사람에게 실망하면 더 큰 실망감을 느끼는 것'에 비유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과거사와 별도로 국가이익을 위해 일본과 사이 좋게 지낼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했다. 8일 부임하는 이 신임 대사는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파이낸셜뉴스 본사에서 단독 인터뷰를 갖고 "양국 경제가 어려운 지금이야말로 두 나라가 상호이익이 되는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좋은 시기"라며 "그동안 한·일 양국이 계속 협력해 왔지만 정말 마음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협력했는지에 대해서는 상호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준규 신임 일본대사가 6일 서울 여의도 파이낸셜뉴스 본사에서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대사는 현 정부 들어 첫 직업외교관 출신 일본대사로 8일 현지에 부임한다. 사진=박범준 기자
대담 = 조석장 정치경제부장·부국장
이 대사는 부임을 목전에 둔 주일대사로서 일본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우리 국민들에게 친일파는 좋은 표현이 아니지만, 일본대사로서 일본인들에게 '친일파'로 인식되는 건 나쁜 게 아닌 것 같다"면서 임기를 마칠 때쯤에는 "한국에서 온 베스트 프렌드로 각인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다음은 이 대사와의 일문일답.
―일본과의 인연은.
▲1995년 게이오대에 가서 연구도 했고 대사관 근무도 했다. (일본에서 지일파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지일파로 설명해도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친일파라고 욕을 먹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볼 때 친일파라고 하면 나쁘지만, 일본인들 눈에 친일파라고 비쳐지는 건 나쁘지 않다고 본다. 대사로서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양국 관계의 현주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한동안 어려웠지 않나. 지난해 말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있었지만 정상적으로 회복됐다고 보긴 어렵다. 이번 합의는 양국 정상화를 위한 계기 혹은 물꼬를 튼 정도라고 볼 수 있다. 한·일 양국이 위안부 합의를 기초로 양국 관계를 회복시키고, 나아가서는 한 단계 더 격상시킬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해결 수순으로 접어들었지만 독도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현안들이 남아 있다. 교과서 문제도 현재진행형인데.
▲과거사 문제는 대부분 단시간 내 해결되거나 칼로 물 베듯 명쾌하게 해결되기가 어려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과거사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일본의 책임이고 그렇기 때문에 부담도 일본이 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별도로 우리가 계속해서 일본 책임을 물을 것이냐 하는 문제는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왜곡하면 단호하게 대응하더라도, 그런 것이 될 수 있으면 한·일 관계 전반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잘 관리해 나가는 게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가운데 한·일 간 안보협력의 활용가치는 무엇이라고 보나. 북·중이 손을 잡고 한·미·일이 맞서는 전통적인 역학관계가 복원돼 어려워지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반도뿐 아니라 어디서나 지정학적 역학관계는 기본적인 틀 아래 수시로 변하게 돼있다. 어떤 것도 고정된 것은 없다. 우리는 안보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미·일과 협조해 왔는데 그 부분을 귀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중국과도 우호관계를 유지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일 안보협력도 여러 가지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일 안보협력은 미국과의 협력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런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면서 안보협력을 발전시켜 가야 한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확정 이후 엔화 가치가 치솟고 있다. 한국의 산업경쟁력은 원.엔 환율에 크게 좌우된다. 일본 닛케이 인터뷰에서 한·일 통화스와프는 서로에게 이익이라고 했는데 대사 부임 후 이 과제 해결에 추진력이 실리는 건가.
▲닛케이 기사는 내가 당초 말한 취지와 조금 다르게 나왔다. 기본적으로 통화스와프는 확대해 나가야 되겠다는게 정부의 기본방침이다. 현재 일본과는 통화스와프가 중단된 상태다. 일본과 통화스와프 문제는 우리가 시장의 반응 등을 잘 고려하면서, 일본 입장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 내 반한 감정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해 보이는데.
▲최근 일본 내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을 싫어한다는 사람이 과거보다 많이 늘었다고 하는데, 그것을 반한 감정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하고 싶진 않다. 과거부터 한국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좋은 감정이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한류 드라마나 K팝 등을 통해 일본인들이 한국을 더 좋아하게 되는 추세가 있었는데 최근 양국 관계가 경색되면서 일본 국민 감정의 변화로 연결됐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실망하면 더 실망이 큰 것과 같다. 일본인들이 한국을 싫어한다는 데는 그런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일 관계가 회복되면, 양국 정부 관계가 회복되면 일본인들의 서운한 감정은 눈 녹듯 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위해서 정부 차원에서는 물론 여러 다양한 방법의 공공외교를 전개해 나갈 생각이고 민간 차원에서 여러 교류, 인적 문화적 활동 이것들이 장려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추가개방이 필요하다고 보나.
▲양국 국민이 상호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동시에 하는 게 필요한데, 여기에는 문화교류가 굉장히 중요하다. 교류와 이해다. 이것은 일방통행이어서는 안 된다. 상호적이어야 하고 호혜적이어야 하고 균형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다가가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일본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도 일본인이나 일본문화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일본문화가 완전히 개방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공중파에서도 일본 영화나 일본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단계가 되는 게 바람직한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한·일 관계가 좋아지고 분위기도 조성됐다는 것일 거다. 대사로서는 될 수 있으면 일본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할 것이다. 많은 구상을 가지고 있는데 부임하면 적극 노력해 보겠다.
―반일감정이 거세지만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냉정히 배워야 할 측면도 많은데.
▲과거사 문제에 대한 앙금 때문에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일본에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이 이웃나라이면서도 중요한 나라인 일본을 우리가 제대로 알고, 또한 일본과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장애가 돼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장애가 되면 결국 그 손해도 우리에게 돌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사 앙금은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일본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일본과 어떻게 하면 사이 좋게 지낼지에 대한 좋은 방법을 찾는 노력은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우리가 배울 것도 굉장히 많지만 일본도 우리에게 배울 게 많다. 그런 점에서 양국 국민이 허심탄회하게 친구가 되는 노력을 함으로써 상호간에 배울 것은 배우는 기본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한국 청년들이 일본 취업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은 오히려 젊은 사람 구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하면 서로 윈윈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일본 취업 열풍이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일본에서 많이 취업하고 강남에는 일본 취업을 위한 학원도 있다고 한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부임 후에 이 현상을 좀 더 살펴보고 대사관, 정부 차원에서 청년들이 일본에서 취직하고 생활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연구해보려고 한다. 우리 청년들이 일본에서 취업해서 일한다는 건 초기단계지만 의미가 크다. 이 사람들이 기본적으로는 일본에서 돈을 벌지만 궁극적으론 일본 회사에 가서 일하기 때문에 일본을 깊이 이해하는 첨병이 될 수 있다. 일본 기업문화를 배우고, 일본인과 부대끼며 살면서 그들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 거꾸로 그들을 통해서 일본인들이 한국을 깊이 아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서로 그런 인식을 하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대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청년들이 일본에서 취직할 수 있는 트렌드가 언제까지 계속될진 모르지만 많은 청년들이 일본에 취직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주인도 한국대사로 재직하면서 비즈니스 외교에 관심이 많았는데.
▲일본 경제가 옛날만 못하더라도 세계 3위 수준이다. 우리도 세계 10위권이고. 지금 양국 경제 모두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지 않나. 지금이 한·일 양국이 허심탄회하게 경제 면에서 협력할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한·일 양국이 계속 협력해 왔지만 정말 마음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협력했는지에 대해서는 상호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일 양국이 서로 투자도 제일 많이 하고, 교역도 제일 많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삼성전자 휴대폰 세계 점유율이 40%라면 일본에서도 그래야 하고, 현대자동차가 세계 5위 기업이라면 일본에서도 일본 업체 제외하고서라도 몇 등은 해야 한다. 거꾸로 일본 제품도 한국에서 팔릴 때 세계에서 몇 등이면 한국에서도 몇 등 해야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 양국 간에 서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통해서 물건도 사주고, 해외투자 하려면 서로 먼저 가서 보고 도와주려는 노력을 하면 좋겠다. 물론 기업들끼리 경쟁이 심해지는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일본과 한국이 상호 합작기업도 많이 만들고 제3국에 같이 가서 공사도 수주하고. 공장도 세우고, 이렇게 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막연한 상상이지만 실제 부임하고 나서 일본 정부 사람들도 만나고 기업인들도 만나면서 구체적으로 실현할 방안을 찾아보려고 한다.
―어떤 대사로 남고 싶나.
▲물론 한국을 대표해서, 한국 이익을 대변하는 대사, 국익 위해 뛰는 대사로 활동하는 것은 기본이다. 다만 늘 전투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는 일본 국민들한테 우정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각인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일본 사람들에게 '이준규 대사는 한국에서 온 우리의 베스트 프렌드, 저 사람 굉장히 멋있는 대사, 일본을 사랑하는 대사, 우리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대사'로 각인되기를 원한다.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쯤에는 한·일 양국으로부터 한·일 간에 서로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고자 노력을 시작하는데 단초가 된 대사, 이런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정리=july20@fnnews.com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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