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비교적 긍정적인 입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던 재야 법조계에서 반대의견을 들고나와 주목된다. 그것도 공수처 신설을 당론으로 내세운 국민의당이 개최한 '검찰개혁방안 모색을 위한 긴급 공개간담회'에서다.17년간 추진과 무산을 반복해온 공수처 도입 논의가 드디어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진 상황에서 야권에서도 적잖아 당황한 눈치다.
국민의당이 26일 국회에서 검찰개혁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개최한 간담회에서는 공수처 신설에 대한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이날 간담회에는 법조계 전문가로 변종필 동국대 법학과 교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김지미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소속 이민 변호사, 이동희 경찰대 법학과 교수,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구본진 로플렉스 대표변호사, 유재원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좌장을 맡은 변종필 교수를 제외한 전문가 6명 가운데 5명은 공수처 신설에 회의적인 입장을 내놨다. 공수처 신설이 곧 또다른 수사권력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지난해 초까지 검사로 재직했다는 구본진 변호사는 "공수처는 검찰개혁의 핵심은 아니고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검찰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 같지 않다"며 "순기능도 있겠지만 역기능도 많을 것이다. 실직적으로 공직자에 대한 수사가 더 안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이동희 교수 역시 "공수처 문제는 수사권.기소권을 다 가진 또 하나의 검찰 같은 조직을 하나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라고 지적했다.
과거 공수처 도입을 찬성했었다고 밝힌 김상겸 교수는 "기존에 있는 조직의 권한도 제대로 통제.관리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어떻게 통제.관리할 수 있겠느냐"면서 "공수처 구성원이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주어진 권한을 국민을 위해 쓴다는 보장을 할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이민 변호사는 "검찰 자체의 제도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른 기소·수사기관을 신설하는 것은 옥상옥에 불과하다"며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반면 유일하게 찬성의견을 낸 김지미 변호사는 "공수처를 설치한다고 해서 검찰개혁이 완성됐다고는 말할 수 없다"면서도 "공수처를 설치해서 고위공직자의 권한 남용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당은 당초 이날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해 공수처 신설법안을 비롯한 검찰개혁방안을 도출하려고 했지만 초청 전문가 대부분이 반대 의견을 견지하면서 다소 놀란 기색이다. 당론에 힘을 더하기 위한 취지에서 열린 간담회가 오히려 정반대의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가 된 것이다.
공수처 신설 법안준비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고 있는 이용주 의원은 "공수처가 필요하다는 당의 입장은 변화가 없다"면서 "공수처만으로는 검찰개혁이 어렵다는 취지로 이해하고 다양한 개혁방안을 강구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27일 자체 법안을 발표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1일 내놓은 안과 세부내용을 조율한 뒤 공동안을 도출, 다음주 중 공식 발의할 계획이다. 이 의원은 "자체 법안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혔다"면서 "더민주안과 공수처장 자격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향후 법안을 조율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ehkim@fnnews.com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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