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마침내 하락세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행(BOJ)의 막대한 물량공세에도 연일 치솟기만 하던 흐름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은 마이너스 금리, 양적완화(QE)라는 정책과는 인과관계가 없고 미국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약발 안 듣는 BOJ의 통화정책'이라는 숙제를 BOJ는 받아든 셈이다. 또 시장 변동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이전보다 더 약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일(현지시간) 엔이 지난 8거래일 동안 3% 하락하며 뉴욕시장에서 달러당 103.45엔으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통화공급이 확대되면 통화가치는 하락한다는 경제학 법칙을 거스르며 올 들어 달러 대비 16% 치솟았던 엔 가치가 마침내 하강 흐름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일단 BOJ로서는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엔 가치 하락이 일본 경제의 뿌리인 수출에 효자 역할을 하게 됐고,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가 학수고대하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도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BOJ의 통화정책이 시장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갖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달 초 언론 인터뷰에서 마이너스 상태인 금리를 더 떨어뜨리는 것에 대한 부담을 토로했고, 같은 달 21일 통화정책회의에서는 예상을 깨고 정책 동결을 결정한 바 있다.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엔 가치를 끌어내리려 할 때는 되레 값이 치솟고, 통화가치 상승으로 이어졌어야 할 정책 동결 이후에는 값이 떨어진 것이다.
시장 흐름이 중앙은행의 통제권 밖에 있음이 분명해졌다.
엔은 2012년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이후 통화완화, 구조조정을 골자로 한 아베노믹스가 펼쳐지면서 초기에는 약세 흐름을 보였다.
본격적인 통화완화가 시작된 2013년에는 달러에 대해 18%, 2014년에는 12% 평가절하됐다.
그렇지만 이런 흐름은 올 들어 완전히 뒤집어졌다.
근본적으로는 구로다 총재가 추가로 동원할 수 있는 통화완화 수단이 마땅치 않을 것이란 시장의 의구심이 자리잡고 있지만 연초 중국발 세계 금융시장 혼란,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등이 안전자산인 엔 수요를 자극하며 엔 가치를 끌어올렸다.
현재 엔 흐름을 좌우하는 것은 미국 경제와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통화정책 기조다.
미국 경제지표 개선에 따른 12월 미국 금리인상 전망이 엔 약세를 불렀다.
정책목표에는 좀 더 접근했지만 구로다 총재로서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AML) 재팬의 금리전략가인 오사키 슈이치는 "이번에는 해외요인이 BOJ를 돕고 있고, 엔을 끌어내렸다"면서 "BOJ는 지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연말 엔 전망에 대해서는 외환딜러 간에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JP모간은 엔이 현 수준에 근접한 달러당 103엔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도이체방크는 미국 대통령선거에 대한 불확실성, 연준의 금리인상이 점진적일 것이라는 점 때문에 달러당 94엔으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고, 이와 대조적으로 골드만삭스는 BOJ가 계속 적극적인 통화완화에 나설 것이라면서 달러당 108엔으로 내다봤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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