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구 철거 싸고 갈등
“도로 확장.주변 환경 정비”.. 서울시.구청 “철거 불가피”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노점상 집단적 저항 나서
노점 때문에 피해 시장상인 '철거 대국민 서명' 운동도
서울 지하철 청량리역부터 제기역까지 수백명의 노점상이 장사를 하고 있다. 주변 상인들은 노점이 시장 환경을 저해하고 수익에도 피해를 준다며 시민들을 대상으로 노점 퇴출 서명을 받기로 했다. 사진=김규태 기자
#1. 서울 아현동 아현초등학교 인근에서 화원 노점을 운영하는 A씨는 마포구청으로부터 점포를 비워달라는 공문을 받았다. 이곳에는 20여개 노점이 남아 운영중이다. 지난 8월에는 30m 가량 떨어진 곳의 아현포차 등 16개 노점이 구청에 의해 철거됐다. 지금은 화분 60여개가 놓여 있다. A씨는 구청에 "1년만 더 머물다 갈 방법이 없나. 겨울은 지나고 싶다"고 사정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구청은 도로를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2. 동작구청은 지난 5일 새벽 4시께 굴착기와 용역 등을 동원, 지하철 이수역 7번 출구 앞 노점상을 철거했다. 지난달 2일에 이어 두번째다. "소음이 심하다"는 등의 민원이 접수된데다 노점이 점자블록을 막고 있어 시각장애인 통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구청은 화단을 조성할 예정이다. 생존권을 주장하는 노점상들은 천막을 다시 세우고 장사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구청과 노점측은 타협점을 찾기 위해 수차례 만났으나 입장차는 여전하다.
■지자체-노점상 갈등, 상인도 가세
서울시내 곳곳에서 지자체와 시장 상인, 노점상 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로 확장' '주변 환경 정비'를 내세우는 지자체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노점상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 구청 관계자는 "마찰은 계속 있었지만 올해처럼 서울 전역에서 노점을 집단철거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3일 서울시와 일선 지자체에 따르면 마포, 종로, 중구, 동작, 동대문 등 10개구에서 노점 철거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 8월 18일 아현포차 등 노점을 철거한 마포구는 나머지 20개 노점도 철거한다는 방침이다. 구청 관계자는 "최근 대규모 단지가 들어서 민원이 집중발생한데다 도로 확장 필요성으로 철거는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일부 노점은 민주노점상전국연합(민주노련) 등에 가입, 저항하는 한편 이미 철거가 된 노점은 서울시에 '주민감사청구서'를 제출, 마포구의 행정처리가 불합리하다며 맞서고 있다.
약령시장, 경동시장 등 시장이 밀집한 동대문구에서는 3일부터 11개 시장 상인이 연합해 '노점 철거 대국민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상점과 노점 업종이 겹치는 탓에 피해를 입는다는 이유에서다. 이곳은 1000곳의 약재상 가운데 300곳이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관계자는 "시장 내 빈 점포를 무상으로 준다고해도 들어오지 않는다"며 "노점들이 물품 가격을 떨어뜨리고 시장 주변 환경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구청은 10여 곳의 노점을 양성화해 도로점용료를 내고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추진했으나 상인들이 "헌법 소원까지 불사하겠다"며 반발하는 탓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9월 노점상 영업시간 연장을 놓고 갈등을 빚은 중구 남대문시장과 도로 공사를 앞둔 인사동 인근 노점상 역시 철거 문제를 둘러싸고 구청과 상인, 노점상간 갈등이 봉합되지 않고 있다.
■민원.환경정비에 생존권은? '타협책' 요원
서울시와 각 구청 입장은 노점을 줄이고 거리환경을 재정비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노점은 '실명제'를 통해 양성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노점수는 빠르게 감소해 2012년 9292개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8038개로 급감했다. 올해도 '노점실명제' 등의 영향으로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최근 시민들이 '세금 탈루' '도시 미관 저해' 등을 이유로 노점에 대한 반감이 크다"며 "시 차원에서도 거리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점을 줄인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대다수 노점상들은 "오랫동안 장사해 온 곳에서 하루 아침에 나갈 수는 없다"며 "최소한의 생존권이라도 보장해 달라"고 호소한다. 민주노련 관계자는 "노점상을 운영하는 사람 대부분이 나이가 많고 유일한 생존수단이기 때문에 갑자기 쫓아내면 갈 곳이 없다"며 "특화거리 조성 등을 통해 이들이 계속 장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청 등과 타협점을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노점 영업이 불법인만큼 철거 시 금전적 보상 등 혜택 제공에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구청은 일자리 알선, 기초수급자 등록 등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지만 사실상 효과가 적다는 게 구청과 노점 상인들 반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점상 중 생계가 어려운 사람도 많지만 시나 구청 차원에서 불법을 조장할 수는 없다"며 "먼저 노점을 양성화하고 지역에 맞게 특성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게 대안일 수 있다. 실명제 과정에서 주변 상인들과 충돌이 없도록 업종을 달리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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