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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뉴발란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공식 석상 드레스코드는 너무나 유명하다. 검은색 터틀넥 니트에 청바지 그리고 뉴발란스 모델 993 운동화. 뉴발란스 운동화는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즐겨 신었다 해서 '대통령의 운동화'로도 통한다. 1906년 영국계 이민자인 윌리엄 라일리는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경찰, 소방관, 우체부를 위해 발에 무리가 가지 않는 신발을 연구하다가 닭이 세 개의 발가락으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라일리는 발을 안정적으로 지지하는 '아치 서포트'를 개발, 운동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108년 역사의 미국 스포츠 브랜드인 뉴발란스는 경쟁사인 나이키, 아디다스와 달리 운동화의 편안함과 기능성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마케팅도 남다르다. 나이키는 경쟁과 사회적 성공에 초점을 맞추고 세계 최고 스포츠 스타들을 광고모델로 기용한다. 그러나 뉴발란스는 보통 사람의 일상 속 성취를 중시하며 평범한 시민을 광고모델로 쓴다.

대부분의 뉴발란스 운동화에는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 표식이 크게 새겨져 있다. 뉴발란스는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 5개 생산공장을 두고 운동화의 70%를 생산한다. 고집스러운 '미국 내 생산'이야말로 뉴발란스의 핵심 가치라고 할 만하다. 미국 소비자는 뉴발란스를 구매하면서 미국 내 일자리를 지킨다는 자부심을 갖는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뉴발란스가 때아닌 수난을 겪고 있다. 불매운동이 번지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뉴발란스 운동화를 불태우거나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진과 동영상이 넘쳐난다. 이 회사 대변인이 언론 인터뷰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관련 질문에 "트럼프가 당선되니 모든 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TPP로 외국의 값싼 제품이 밀려드는 게 달갑지 않은 뉴발란스로선 TPP 포기를 지지하는 게 당연했지만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들에게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결과가 됐다.

가장 미국적인 기업,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상징하는 기업이 갑자기 격렬한 지탄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대선 이후 미국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