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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화폐교환' 극약처방, 지하경제 몰아낼까


인도 '화폐교환' 극약처방, 지하경제 몰아낼까
위부터 캐나다, 이탈리아, 남아공,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 브라질, 필리핀, 멕시코, 인도, 인도네시아 /사진=OECD, 인도국세청, WSJ

"500루피(8만5200원), 1000루피 지폐 교체가 불편을 주겠지만 일부는 삶이 엉망이 되고 있고, 이는 내가 그들에게 벌을 주는 방식이다. 그들은 그동안 빈곤층과 중산층을 갈취해왔다. 그들은 여러분의 돈을 갈취해 사업을 꾸려왔다. 내가 이번 싸움을 시작한 이유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500루피, 1000루피를 신권으로 교체한다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밝힌 대국민담화 내용이다.

취임 이후 높은 지지율 속에 개혁을 이어가고 있는 모디 총리는 탈세, 범죄자들을 응징하고, 2조달러(2338조원)규모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경제를 양지로 끌어내기 위해 화폐교환, 사실상의 화폐개혁이라는 극약처방을 단행했다. 구권은 9일부터 사용이 중지됐고, 다음달 30일까지 신권으로 교환된다. 그러나 하루, 주간단위 교환 한도가 정해져 있어 한꺼번에 대규모 교환은 불가능하다. 소득 노출을 피해 막대한 현금을 쌓아두고 있던 이들에게는 재앙이다.

화폐교환은 부유층이 숨겨둔 돈을 양지로 끌어내는 것이다. 과세당국은 현금이 대규모로 들어온 이들을 조사해 세금을 물릴 것으로 보인다.

27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N머니에 따르면 전체 거래의 90%가 현금으로 이뤄지는 인도에서 최고액권인 500루피, 1000루피 화폐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경제가 갑자기 멈춰버리는 것과 같은 충격을 준다. 특히 이 2가지 고액권은 전체 유통화폐 가치의 86%를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화폐교환으로 현재 7.1% 인 인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최소 1%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 통계청장 출신인 런던 국제성장센터(IGC)의 인도 부문 책임자 프로나브 센은 "올 회계연도 성장률이 3% 낮아지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금부족은 그러나 조만간 해결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인도중앙은행인 인도준비은행(RBI)에 따르면 8일 발표로 5조루피 이상의 구권이 기능이 정지됐다. 그러나 이가운데 신권으로 교환된 규모는 1조루피에 불과하다. 신권은 크기도 작아 기존 현금지급기(ATM)에서는 쓸 수 없다. ATM 교체에도 수주일이 걸릴 전망이다.

RBI도 화폐교환에 대한 부작용 완화에 나섰다. 26일 블룸버그통신은 RBI가 예금이 몰려들면서 높아진 시중은행들의 초과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9월16일부터 11월11일 사이에 증가한 예금의 지급준비율에 해당하는 현금전액을 RBI에 예치토록했다고 보도했다. 인플레이션과 과잉유동성 억제를 유한 조치로 내달 9일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된다.

하지만 단기적인 충격이 크다고 개혁을 마냥 미룰 수는 없다는게 모디 총리의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일반 시민들의 불편이 따르고, 경제 역시 성장이 둔화될 가능성이 높지만 지하경제에 쌓여있는 막대한 돈을 끌어내지 않으면 다음 단계의 성장을 이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화폐교환으로 세원을 확보하고, 여기서 마련된 재정으로 낙후된 인프라 구축에 나서면 경제성장을 가속화는 발판이 마련된다.

인도의 납세자 비율은 보잘것 없다. 2013년 기준 전체 인구의 1.6%인 약 2000만 개인과 가족만이 세금을 냈다. 98.4%는 세금을 한 푼도 안낸 것이다.

GDP 대비 개인·법인 소득세 비중도 선진국 평균 12%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5.6%에 불과하다.
소득 양성화를 통한 세원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인도 담당 이코노미스트 실란 샤는 "신권 공급이 늘면 부정적 충격도 완화될 것"이라면서 "모디 정부의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감안할 때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화폐교환 뒤 새롭게 등장한 우회로를 어떻게 차단하고, 양성화된 신권이 계속 양지에 머물 수 있도록 할 것인지는 숙제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