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크리스마스 마켓을 19t 트럭으로 공격한 용의자인 아니스 암리(24)가 도주 나흘 만인 23일 이탈리아 밀라노 인근에서 경찰의 총에 맞에 숨졌다.
마르코 민니티 이탈리아 내무장관은 이날 오전 로마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의심의 여지 없이 사살된 사람은 베를린 테러의 용의자인 아니스 암리가 맞다"고 밝혔다.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기자회견 직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베를린 트럭 테러 용의자가 이탈리아에서 사살됐음을 알렸다. 메르켈 총리는 이에 대해 이탈리아와 이탈리아 경찰에 사의를 표명하며 안도했다.
메르켈 총리는 그러나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는 "우리는 이번 주말에야 당장의 위험이 끝나 안도할 수 있게 됐지만, 전반적으로 테러위험은 몇 년동안 그랬던 것처럼 지속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메르켈 총리는 또 사살된 용의자가 테러 위험인물 감시대상에 있었음을 의식해 "이번 사건은 많은 의문을 제기한다"며 포괄적인 조사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안사통신 등 이탈리아 언론은 테러 용의자가 이날 오전 3시께 밀라노 근처 세스토 산 지오반니에서 검문을 받던 중 경찰에게 총격을 가했고, 경찰이 응사한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밀라노의 대테러 당국 관계자는 사망자의 외모와 지문을 근거로 그가 베를린 테러 용의자인 암리임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암리는 이탈리아 경찰관 2명이 밀라노 교외 세스토 산 지오반니의 기차역 앞 광장에서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자 갑작스레 총을 꺼낸 뒤 한 경찰관의 어깨를 쐈고, 대응 사격한 29세의 수습 경찰관의 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용의자는 그러나 현장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범들이 흔히 외치는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대신에 "경찰, ⅹ자식들아"라고 소리질렀다고 경찰은 밝혔다.
앞서 독일 당국은 암리의 지문이 범행에 쓰인 19t 트럭 운전석과 문 등에서 발견됐다면서 그가 사실상 범인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독일 당국은 당초 테러 직후 파키스탄계 청년을 용의자로 붙잡았으나 이튿날 증거 불충분으로 풀어줬고, 사건 발생 이틀 뒤인 21일에야 암리를 용의자로 지목해 유럽 전역에 현상금 10만 유로를 내걸고 공개 수배했다.
튀니지 태생의 암리는 작년에 독일에 들어가 난민 신청을 하기 전 이탈리아에 수 년 간 머물렀다.
그는 2011년 중동을 휩쓴 '아랍의 봄' 사태 직후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 들어왔고, 시칠리아 섬 난민등록센터에 불을 지른 혐의로 3년 넘게 현지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는 2015년 석방돼 튀니지로 송환 명령을 받았으나, 튀니지 당국이 송환을 머뭇거리는 사이 독일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탈리아 대테러 경찰은 독일에서 도주한 암리가 알프스산 기슭에 위치한 프랑스 샹베리에서 이탈리아 북서부 토리노로 기차 편으로 이동한 뒤 토리노에서 기차를 타고 밀라노로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사건 초기 엉뚱한 사람을 용의자로 몰아 초동 대응에 문제점을 드러낸 베를린 경찰 당국은 암리가 아직 독일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고 22일에도 그가 테러 전 목격된 것으로 알려진 베를린 시내 모스크를 집중 수색하는 등 독일 내에서 그의 행방을 쫓았지만 다시 한번 허를 찔린 셈이 됐다.
독일 경찰은 암리가 테러 공격을 자행할 때와 베를린을 벗어날 때 테러 조직 등의 지원을 받았는지 여부를 캐고 있다.
이탈리아 경찰 역시 암리가 사살된 밀라노 지역에 지인이나 연관된 테러 조직이 있는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그러나 암리가 과거 이탈리아에 체류할 동안 밀라노를 방문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덧붙였다.
암리가 사살된 직후 수니파 극단주의조직 '이슬람국가'(IS)는 베를린 트럭 테러 용의자 암리가 등장하는 동영상을 IS 선전매체 아마크통신에 올림으로써 그가 IS와 연관됐다는 추정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암리는 이 동영상에서 아랍어로 IS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서방의 공습으로 사망한 무슬림의 복수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런 가운데, 튀니지에 있는 암리의 가족은 그의 사살 소식을 접한 뒤 사망 정황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요구하며, 암리의 시신도 튀니지로 되돌려받길 원한다고 말했다고 튀니지 현지 언론은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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