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책임 인정은 없고 미·일 동맹 굳건함만 강조
日 "오바마도 사죄 없었다" 先사과 표현에 난색 표명
현직으론 처음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교 행보에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차대전에 대한 책임 인정이나 희생자에 대한 사죄 언급은 없이 '미.일 동맹의 굳건함'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진주만 공습을 외교 전략에만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7일 아사히신문, NHK 등 일본 매체는 아베 총리가 하와이에 도착해 미군 병사들이 묻혀 있는 국립 태평양 기념 묘지(펀치볼 묘지) 등을 방문해 헌화하고 묵념했다고 보도했다.
또 그는 일본 이주민과 전사자들이 묻혀 있는 마키키 묘지와 지난 2001년 일어난 '에히메마루' 침몰사건 희생자 위령비도 찾아 헌화 후 추모했다. 이어 28일(한국시간) 아베 총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진주만을 찾는다. 이 곳에서 아베 총리와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군 공격으로 침몰한 미군 전함 '애리조나호'의 승무원을 추모하는 애리조나 기념관을 찾아 함께 희생자 위령식을 진행한다. 위령식 후 양국 정상은 소감을 표명할 예정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아베 총리의 소감에 사죄나 반성의 문구가 담기지 않을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대신 미.일 관계가 '희망의 동맹'이라고 강조하고, 양국 간 '화해의 힘' 등의 표현이 들어갈 예정이다.
이는 간접적으로 반성을 표했던 지난해보다 후퇴한 어조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4월 미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전쟁 책임에 대해 "통절한 반성"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진주만 공격도 "깊이 잘못을 뉘우친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해 8월 전후 70년 담화에서도 "2차 대전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를 표명한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보다 사죄 표현은 줄고 미.일 동맹에 대한 외교적 수사만 늘어난 셈이다. 일본이 동맹 강화 등 외교 전략에 치중한 나머지 전쟁 책임은 등한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5일 한.미.일의 학자 및 예술가 53명은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아베 총리의 역사관에 의문을 나타내는 편지를 보낸 바 있다. 편지에는 "아베 총리는 역사를 바로 보고 있지 않으며, 한국과 중국의 전쟁 기념관에 방문해 추모하지도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원폭지에 방문했을 당시에도 원폭 투하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과 표현을 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 매체들은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이 결정된 직후부터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이 "사죄 메시지는 없다"고 공언했다고 보도해 왔다.
일본에서는 아예 자국이 태평양 전쟁의 책임을 모두 떨쳐 냈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형편이다. 일본 경제매체 '재팬비즈니스프레스'는 칼럼에서 "(태평양전쟁은) 양국 모두 국익을 위해 사력을 다한 것"이라며 "일본은 원폭 피해, 전범 처벌 등 패배의 대가를 호되게 치렀기 때문에, 75년이 지난 지금 '누가 나쁘다'고 논의를 되풀이할 필요성은 전혀 없다"고 역설했다.
이노우에 야스히로 히로시마시립대 국제학부 교수는 허핑턴포스트재팬에 "하와이 원주민 사이에는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이 하와이를 점령해 군사기지화한 미국을 '한 방 먹인' 사건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며 "공습 생존자도 아베 총리 방문을 기다린다"고 주장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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