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우리나라 금융 현장엔 '믿거나 말거나'급 풍경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최근 금융당국 고위관계자에게서 들은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상황이다. 그는 가까운 지인 A씨의 경험을 들려줬다. 서울시내 13평형 아파트 값이 2000만원가량일 당시 30대 초반인 A씨는 생애 첫 집장만에 500만원이 부족했다. 그때만 해도 국내 은행은 정부가 시키는 대로 기업에 자금을 대느라 개인대출 여력은 없던 시절이다. 심지어 법으로 가계대출 취급은행을 정해놨지만 실제 해당은행에서 개인이 대출받기란 '신의 아들' 수준은 돼야 가능한 일이었다.그런데 A씨는 그 바늘구멍을 뚫었다. 금융 감독기관 종사자였던 위치, 대출창구에 때마침 담당자로 있었던 이가 A씨 고교 동창이었다는 점이 작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달은 그 뒤에 났다. 동창은 당시 관행이던 10% 리베이트 금액 50만원을 A씨에게도 요구했다. 감독기관에 있던 A씨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동창은 고민 끝에 절충안을 냈다. 자신의 몫 20만원은 필요없으니 상사몫 30만원은 반드시 내놔야 한다는 게 동창의 최후통첩이었다. A씨가 그 30만원을 실제 건넸는지 여부는 물론 확실치 않다.
누가 봐도 진기하기만 한 그때의 대출 관행에 비해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금융권 곳곳에 박혀 있던 여러 후진적 양태는 대체로 1997년 외환위기(IMF 구제금융)를 겪으며 서서히 도려내졌던 걸로 파악된다. 하지만 그 후 은행들이 투명성·건전성을 지상과제로 삼기 시작하며, 너도나도 손대기 시작한 게 가계대출이었다는 대목은 아이러니다. 은행들은 정부로부터 독자생존이라는, 당시로선 미지의 영역을 걷기 시작하며 불확실투성이 기업대출 대신 소소할지언정 이익이 보장되는 가계대출로 갈아탔다. 법으로도 모든 은행에 개인대출이 허용됐고, 1997년 300조원이던 가계부채는 어느새 1300조원까지 불어났다. 가계 빚으로 경제를 살리려 한 정부, 금리장사로 이익을 내야 했던 금융권, 저금리 속 묻지마 빌리기에 나섰던 무분별 대출자들이 결국 지금의 1300조원 가계부채 공범에 속한다.
문제는 금리인상과 맞물려 이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가계부채로 곳곳이 파열음 직전이라는 사실이다. 빚더미 취약층뿐 아니라 금융권 역시 비상이다. 리스크 관리 문제보다 앞으로 먹고살 것이 없는 게 더 큰 낭패다.
당국의 대출 옥죄기 방침에 은행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전년 대비 6%대로 잡았다. 지난해의 경우 전년 대비 10%대, 2015년엔 14% 증가세였다. 절대적 수익원이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퇴로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보이지 않는다고 금융권 안팎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은행들이 지역점포를 대거 폐쇄하고 인원을 대규모 감축하고 있는 건 핀테크 영향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론 새로운 사업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금이라도 여신심사 능력을 키워 기업금융에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외환위기 때로부터 20년이 흐른 2017 정유년(丁酉年), 금융권은 다시 대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금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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