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자산 주식 대량매도.. 만기수익금 지급 무산
"85억8000만원 지급하라" 서울중앙지법 첫 판결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도이체방크(도이치은행)를 상대로 낸 집단소송에서 승소했다. 2005년 '증권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된 지 12년 만에 나온 법원의 첫 판단으로, 판결이 확정되면 상품 투자로 손실을 본 투자자 400여명에게도 효력을 미치게 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김경 부장판사)는 20일 김모씨 등 투자자들이 도이치은행을 상대로 낸 증권 관련 집단소송에서 "김모씨 등 대표 당사자 6명 등 피해자들에게 총 85억80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한국투자증권 부자아빠 주가연계증권 제289회'(한투289 ELS) 상품에 투자했다가 만기일에 약 25%의 손실을 본 투자자 464명에게 효력을 미친다.
'한투289 ELS'는 국민은행 보통주와 삼성전자 보통주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으로 2007년 8월 총 198억여원어치가 팔렸다. 헤지운용사인 도이치은행은 ELS 만기일인 2009년 8월 장 종료 시점에 기초자산인 국민은행 보통주를 저가에 대량매도해 종가가 만기상환 기준가보다 낮아졌고 투자자들에게 손실이 돌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투자자들은 "도이치은행이 만기조건을 충족하기 직전에 기초자산을 대량으로 매도해 만기수익금 지급이 무산됐다"며 집단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도이치은행이 주식을 매도한 것은 시세를 조종할 목적으로 인위적인 조작을 가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한투289 ELS 만기상환 조건을 충족하는지에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도이치은행이 시세를 조종해 투자자들이 입은 피해는 만기상환 조건을 충족하면 받기로 약정된 상환금(투자원금의 128.6%)에서 실제 지급받은 금액(투자원금의 74.9%)을 제외해 산정됐다.
은행 측은 "투자자들도 상품을 구입할 때 증권사의 위험회피 거래로 인해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일부 감경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어 "투자자들이 입은 손해는 주가연계증권에 내재하는 위험 때문이라기보다 도이치은행이 주가를 낮춰 만기상환 조건을 이루지 못하게 할 의도로 주식을 매도했기 때문"이라며 "투자자들에게 귀책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증권 관련 집단소송 진행이 대법원에서 최종 허가된 것은 도이치은행이 3번째 사례다. 앞서 대법원은 진성티이씨와 캐나다왕립은행(RBC.로열뱅크오브캐나다) 주주들이 신청한 집단소송도 허가했다.
이 가운데 진성티이씨는 화해로 끝났고 RBC는 1심이 진행 중이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증권관련 집단소송은 증권 거래 과정에서 생긴 집단적 피해 구제를 위해 피해자들을 대표하는 대표 당사자가 나와 소송을 수행하고 판결의 효력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 전체에 미치게 하는 일괄구제 제도다. 법원의 허가가 있어야 소송이 가능하다는 것이 일반 민사소송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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