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샌드위치' 신세 전락한 한국외교
美 '연러타중' 전략으로 북.미, 북.러 관계 주목
北 도발위협 커질수록 美, 한국에 무기구매 요구
한반도 주변 군비경쟁 촉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동아시아엔 적지 않은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대내외 정치적으로 변화의 시기에 직면한 미.중.일.러 등 한반도 주변국 리더들은 이미 강(强)대 강(强)대결을 예고한 상태다. 미국 트럼프 시대, 한반도 외교지형의 변화와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파이낸셜뉴스는 총 5회에 걸쳐 시리즈를 게재한다.
동아시아에서 스트롱맨(strongman)들의 활극이 시작됐다. 극의 전개는 현재로선 대단히 불확실하다.
미국은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했고, 헌법 개정을 예고한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우경화 행보는 전보다 더 거침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올해 3월 자민당 총재 연임제한 규정을 개정해 내년 3연임에 도전, 2021년까지 집권하는 포석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강한 리더십을 보여온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역시 올해 11월 2기 체제를 앞두고 있다. 지난 2014년 크림반도 사태를 일으켜 전후질서체제의 근간을 뒤흔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선 아예 "위대한 조국 러시아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신년사에서 '올해를 싸움준비 완성의 해'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북한은 오는 8월께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윤곽을 잡기 직전인 앞으로 6~7개월 핵능력 고도화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반도와 주변국 지도자들의 움직임이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으로 빚어진 국정공백이 국제사회에서 힘의 공백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이 크다.
■트럼프, 외교.경제 관통하는 '거래공식' 예고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안보와 경제 등 전분야를 관통하는 기본개념이다. 이는 다른 쉬운 말로 "미국 제품을 사라, 미국인을 고용하라"로 표현된다.
철두철미한 부동산개발업자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 철학'이 미국의 국익과 결부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행태에 미국의 주요 상대국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의 우방인 영국, 일본조차도 이 새로운 거래공식에 긴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당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비롯해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것에 대해 적잖이 긴장하고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군대가 소모적으로 다른 나라 군대를 도와주고 있다"고 발언한 것 역시 주목 대상이다.
일본은 일단 다음달 초로 예상되는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 측으로부터 TPP 이탈방침 철회 답변을 얻어내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향배에 따라서는 일본은 미.일 동맹 유지에 한층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할 가능성도 있다"며 "미.일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 거래주의에 대해 가장 긴장하고 있는 곳은 중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무역불균형을 개선하겠다며 무역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를 보이고 있다. 역대 정권에서 지켜온 미.중 관계의 근간인 '하나의 중국' 원칙도 트럼프 대통령에겐 반드시 지킬 필요가 없는 어디까지나 '협상대상'일 뿐이다. 이런 태도는 미국이 전통 앙숙 러시아와 기묘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과 맞닿아 있다. 푸틴 대통령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며 핵 미사일 등 군사력 강화를 벼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러시아의 손을 잡겠다는 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 견제에 있다.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국을 때리겠다는 이른바 '연러타중(連露打中)' 전략은 트럼프식 외교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식의 냉정한 현실주의에 기반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국내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은 이 관계에서 파생돼 나오는 북.미, 북.러 관계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 핵심 고위관계자는 "예단하긴 어려우나 만일 북핵 문제가 개선되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러시아를 통한 접경지역 개발 등 남북경협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北, 日 문제 접근방식은
오바마 행정부 당시 우리 외교부는 일본, 북한 등과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직접 대화보다는 각각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에 기대어 해결하려고 했다.
이를테면 일본 각료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위안부 관련 망언 등이 나오면 미국에 일본을 관리해줄 것을 요청했고, 북한이 핵도발을 감행하면 중국에 북한을 다뤄달라는 식이었다. 이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번 '스트롱맨'의 시대에서도 통할 것인지 외교당국으로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북한의 도발 위협은 트럼프식 거래의 중요한 단초가 된다.
한국의 안보 대가로 미 측은 한국에 미사일 등 무기구매 확대를 요구할 것이며 이는 다시 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군비 경쟁을 촉발할 것이다.
경남대 박정진 교수는 "미국은 자국의 이익증대를 위해 한국에 무기구매 요구를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미 측이 정부 출범 직후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개발을 주요 국방기조로 제시했다는 건 미국의 국익이라는 틀 속에서 이미 한반도 정책에 대해 어느 정도의 틀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식 거래주의 외교가 본격 가동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국정공백이 클 수밖에 없어 보인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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