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근거는 ‘명분과 실리’
작년 10월 환율관찰국 지정.. 당시 환율개입 없다고 판단
몇개월 새 바꿀 ‘명분’ 없어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오는 4월 대미흑자국을 대상으로 환율조작국 지정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우리 정부 역시 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이 정해 놓은 환율조작국 지정요건 3개 중 2개(연간 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3% 이상)에 해당된다. 마지막 하나인 통화가치 절하를 위한 시장개입은 해당사항이 없다. 정부는 이 같은 상황에서도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중국이 환율조작국이 될 경우 피해가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 "가능성 희박하다"
7일 기획재정부 국제금융라인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국책연구기관들이 우리나라가 미국 재무부의 환율 관찰대상국에 올라 있다며 안심할 수 없다고 잇따라 경고한 것과 상반된 견해다.
실제 앞서 국립외교원 산하 외교안보연구소는 "미국이 한국을 계속 환율조작 '관찰대상국'에 포함시켜 왔다"며 "상반기 중 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역시 "미국이 중국과의 극단적 대결을 피하는 동시에 압박을 하기 위해 한국.대만 등 작은 나라를 우선 지정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이런 분석과 반대로 한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은 '명분' 문제다. 미국 재무부는 작년 10월 한국을 비롯, 중국.독일.일본.대만.스위스 등을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 바 있고 당시 모두 환율개입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기재부 국제금융정책국 한 관계자는 "작년 10월 환율관찰국으로 지정할 당시 분명히 환율개입이 없다고 밝혔던 미국이 몇 달 새 입장을 돌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미국 입장에서도 '명분'이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탓에 결국 환율조작국 지정에 대미 무역흑자 순위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 미국이 대미무역 흑자규모 순서를 고려한다면 한국의 지정 가능성은 낮아진다. 미국 재무부가 내놓은 2015년 7월부터 2016년 6월까지 환율 심층분석대상국 지정기준 항목별 평가를 보면 이 기간 우리나라의 대미흑자 규모는 302억달러로 중국(3561억달러), 독일(711억달러), 일본(676억달러), 멕시코(626억달러) 다음이다.
만약 미국이 이들 국가를 모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경우 미국 경제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결국 환율조작국 지정에서 비켜갈 수 있다는 게 기재부 측의 논리다. 다만 이런 논리 역시 우리 정부가 만들어낸 논리일 뿐 미국 측 의사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결국 중국이 변수"
아울러 스티브 므누신 신임 재무장관 지명자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지를 이행하기 위해 '게임의 룰'을 바꿀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경우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지만 꼭 동반 지정이 되지 않더라도 피해는 막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은 당장 대중 무역적자를 개선할 수 있다. 2010년대 들어 미국은 연평균 7103억달러 무역적자를 기록해왔고, 이 가운데 대중 무역적자가 연평균 3190억달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와 함께 대중 무역적자 축소 시 제조업 일자리가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반면 미국이 손해보는 것도 있다. 위안화 가치 절상으로 대중국 수입단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미국의 대중국 수입 증가세가 급감할 수 있다. 중국으로부터 수입이 줄어들면 제품 수급에 차질이 불가피해지고, 이는 미국 자국 내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다. 이는 미 연준의 공격적 금리인상 및 장기 시장금리 상승을 통해 경기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당장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이 어려워진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은 1244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25.1%를 차지한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에서 3분의 2가량이 중국의 수출용 중간재 성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수출은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게 된다.
아울러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 위해 조건을 개정하면 우리 역시 중국과 함께 환율조작국에 포함될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원화 가치는 위안화와 함께 미 달러화에 대해 동반 상승하게 된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은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지게 된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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