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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說] '야쿠르트 아저씨' 본 적 있으세요?

[Job說] '야쿠르트 아저씨' 본 적 있으세요?
전동카트를 타는 야쿠르트 아줌마 [사진=홍예지 기자]

<편집자주> 'Job說(잡설)'은 직업이라는 뜻의 'Job'과 이야기하다라는 뜻의 '說(말씀 설)'자가 만나 탄생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업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직업인들만 아는 재미있는 뒷이야기까지. 때론 설움과 애환 역시 나누기 위한 공간입니다.

야쿠르트 아줌마가 아니라 야쿠르트 '라이더'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등을 꼿꼿이 세우고 시속 8km 전동차를 모는 뒷모습.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자기 구역의 길은 척척 꿰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을 물어보면 어찌나 상세하게 설명해주는지 인간 내비게이터가 따로 없다.

야쿠르트 아줌마가 처음 등장한 건 1971년, 당시는 여성들의 일자리가 거의 없었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주부들의 가사 외 시간을 이용한 일자리로 각광받았다.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주부들은 깜깜한 새벽 무거운 야쿠르트 가방을 메고 길거리로 나섰다.

47명으로 시작한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이제 1만4000여명이 넘는다. 각종 야쿠르트 뿐 아니라 신선한 커피와 건강 스낵도 판매한다.

[Job說] '야쿠르트 아저씨' 본 적 있으세요?
고작 3m 남짓 움직였지만 '빠르다'는 생각이 드는 속도에 깜짝 놀랐다 [사진=홍예지 기자]

▶'전동카트' 타 봤더니..

'야쿠르트 아줌마'하면 이제는 발로 뛰는 모습 대신 전동카트를 운행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3년 전 도입된 '전동카트'는 배달 풍경을 확 바꿨다. 작은 카트 속에 야쿠르트를 가득 싣고 발판에 올라 운행한다. 조작 버튼은 단 3개로 작동법도 간단하다. 아래 사진에서 R은 후진, N은 멈춤, D는 운행·전진이다. 또 오른쪽 두 버튼은 속도 조절과 시스템 점검 버튼이고 왼쪽의 빨간 버튼은 깜빡이다.

최대 시속은 8km. 야쿠르트 아줌마가 빠른 보폭으로 한 시간에 4km 정도를 걷는다는 전제 하에 두 배 높인 속도다. 직접 타서 3m 남짓을 운전해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는 느낌에 깜짝 놀랐다.

전동카트는 '전기차'다. 하루에 한 번 8시간 정도 충전하면 1일 활동에 충분한 전력을 갖춘다. 어머님들은 일과가 끝난 뒤 구역 사업소에 모여 다음날까지 카트를 충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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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은 후진, N은 멈춤, D는 운행·전진이다. 오른쪽 두 버튼은 속도 조절과 시스템 점검 버튼이고 왼쪽의 빨간 버튼은 깜빡이다.[사진=홍예지 기자]

▶ '원동기 면허'는 필수.. 때론 가벼운 접촉사고도

마치 장난감 자동차 같은 전동카트는 특히 어린이들이 눈독 들인다. 그러나 반드시 면허를 따야한다. '원동기'에 속하는 전동카트는 현행법상 시속 20km 미만으로 면허가 필요 없지만 어머님들의 안전을 생각했다.

실기는 물론 필기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이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여의도에서 만난 17년 경력에 베테랑 김 여사님도 면허시험에 한 번 떨어지고 두 번째에 붙으셨단다.

전동차를 몰고 나온 첫 날 김 여사님께서는 벽에 부딪히는 접촉사고를 냈다. 가벼운 사고라 인명피해는 없었다. 전화로 신고하면 수리는 회사에서 다 해준다. 수리비도 따로 없다. 한 달 임대료는 월 4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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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카트 작동법을 알려주시는 여의도 김여사님 [사진=홍예지 기자]

▶ 야쿠르트 아줌마는 '인간 '내비게이터'

한 구역에서 기본으로 10년 이상씩 일하다보니 길은 훤히 꿰고 있다. 길 뿐이랴. 경력 17년차의 김 여사님은 구역의 버스 노선까지 줄줄 외우고 계셨다. 이야기를 나눈 30분여의 시간 동안 3명의 행인이 길을 물었다. '길을 모르면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길을 물어본다고 한다. 김 여사님은 "길을 잘 알려줘서 고맙다며 야쿠르트를 하나씩 팔아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 카드 결제도 '좋아요'.. 여름엔 커피가 '인기'

바뀐 건 배달 풍경만이 아니다. 요즘 어디를 가나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곳이 없다. 야쿠르트도 카드로 구매가 가능하다.

또 판매하는 품목도 늘었다. 2년 전부터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커피 판매를 시작했다. 여름에는 시원한 '콜드 브루'가 인기라서 몇몇 여사님들은 12시부터 1시까지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을 겨냥해 추가 수입을 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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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카트 속에는 다양한 야쿠르트가 꽉 차있다. [사진=홍예지 기자]

▶ 야쿠르트 아저씨 본 적 있으세요?

이렇게 달라진 게 많지만 변치 않는 게 하나있다. 바로 남자 배달원이 없다는 것. 한국야쿠르트에 따르면 전국에 '야쿠르트 아저씨'는 단 1명도 없다. 지원자도 없지만 있다 하더라도 남성은 뽑지 않을 계획이다. 한국야쿠르트 측은 "대표적인 주부 일자리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해봐야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의도 김 여사님은 새벽 4시 반에 문자를 보내셨다. 인터뷰 시간을 조율하기 위해서다. 아침 7시에 문자를 확인하곤 깜짝 놀랐다. 고된 일정에 무척 피곤하실 텐데도 찡그리시는 법이 없다. 그렇지만 팸플릿을 단숨에 구겨버리거나 대놓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걸 보면 속이 상하신다고.

놀라운 힘의 원동력은 '가족'이다.
야쿠르트 아줌마에서 '라이더'로 대변신했지만 이들은 대한민국의 '엄마'다. 야쿠르트 한 개씩을 팔아 자식들 대학 공부를 시켰다.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일도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우리보다 먼저 길거리로 나와 반갑게 인사를 건넬 것이다.

imne@fnnews.com 홍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