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GDP 절반에도 못미친 '삶의 질'..가족·공동체 의식 홀로 뒷걸음질

최근 10년간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크게 성장했지만 정작 국민들이 느끼는 '삶의 질'은 경제규모 성장세에 정비례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과 안전에 대한 체감 만족도는 크게 높아졌지만 가족·공동체 인식은 뒷걸음질쳤다.

■GDP 못따라간 '삶의 질'
통계청은 15일 한국 삶의 질 학회와 공동으로 연구한 '국민 삶의 질 종합지수 작성 결과'를 발표하고 "지난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삶의 질 종합지수는 기준년인 2006년 대비 11.8%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 기간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8.6% 증가한 것에 비해 절반 수준에 그친 것이다. GDP가 증가한 것 만큼 삶의 질 개선폭은 크지 않았던 셈이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주관적 영역인 '삶의 질'을 수치로 제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통계청이 삶의 질 종합지수 작성에 나선 것은 기존 GDP 중심 경제지표가 '질적인 성장' 여부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표된 삶의 질 지수는 한국 삶의 질 학회가 통계청에서 구축한 국민 삶의 질 지표 12개 영역의 80개 지표를 활용해 기준치(100) 대비 증감률을 이용해 산출했다. 56개(70.0%)의 객관지표, 24개(30.0%)의 주관지표로 구성돼 있다. 자료보정 및 가중치 설정 등 작성방식은 캐나다 웰빙지수인 CIW 종합지수를 참고했다. 캐나다의 경우에도 지난 10년간 1인당 실질 GDP는 8.8% 증가했으나 CIW 종합지수는 3.9% 증가하는데 그쳤다.

통계청 관계자는 "GDP 증가가 곧바로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선진국 결과와도 유사하다"고 말했다.

객관지표 종합지수는 12.9%, 주관지표 종합지수는 11.0% 상승했다. 객관지표와 비교해 주관지표는 등락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이는 2008년~2009년 주관지표의 높은 증가율은 소득만족도, 소비생활만족도, 사회안전에 대한 평가 지표의 상승에 기인했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또 2010년~2011년의 하락한 이유는 스트레스인식정도, 사회안전평가, 학교생활 만족도, 여가활용만족도 지표가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이 기간 교육(23.9%), 안전(22.2%) 영역 지수는 2006년에 비해 20% 이상의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소득·소비(16.5%), 사회복지(16.3%), 문화·여가(12.7%), 환경(11.9%), 시민참여(11.1%) 영역 지수는 10% 이상 증가해 전체 종합지수와 비슷했다. 건강(7.2%), 주거(5.2%), 고용·임금(3.2%) 영역 지수는 10년 전에 비해 증가했으나 그 폭은 10% 이하에 머물렀다.

이와 대조로 가족·공동체 영역 지수는 1.4% 감소했다.

■"현행 GDP 개선해야" 한목소리
통계청이 이날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GDP 플러스 비욘드 국제 컨퍼런스'에서 참석자들은 전통적 GDP가 경제 전반에 '분배'와 '웰빙'이라는 변화된 경제활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윤종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는 "기존에는 GDP 증가로 인한 낙수효과로 고용창출·소득증가에 기여했지만 이제 더이상 낙수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면서 "웰빙이라는 지표를 정책과 연결시키는 게 필요한데 이는 자문과정을 거쳐야 하고 이해관계자간 합의가 기반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체감 지표를 구체적 지수로 제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쟁점들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유경준 통계청장은 "국가간 통계역량 편차가 커 국제적 논의가 어렵고, 어떤 지표에 가중치를 더 부여할 것인지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면서 "향후 논의가 더 진척되면 합의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 청장은 이어 "기존 GDP가 포착하지 못하는 삶의 질 지표와 우리나라만의 특색을 반영해 사회 전반에 공감대를 얻고 나아가 정책 목표로서 논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초기 단계인 지표인 만큼 향후 새로운 지표를 추가로 개발할 수 있도록 보다 많은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엔리코 지오바니니 전 OECD 통계국장은 현행 GDP가 분기별로 산출되는 것과 달리 삶의 질 지표 중 하나인 환경 지표는 1~3년 후에 수치가 될 수 있는 점을 예로 들면서 "편향된 공공담론을 형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오바니니 전 국장은 "데이터야말로 웰빙의 신재생에너지이며 모든 변화의 동력"이라며 "데이터 혁신은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협 하와이대 교수도 "정책 개발에 있어 최상의 데이터가 필수적이며 국민소득계정의 질을 여러 면에서 높이는 것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다"고 언급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