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원정출산'을 통해서라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려던 분위기가 미국 정부의 강화된 세금법에 따라 된서리를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201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미국 시민권 포기가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것은 해외금융계좌신고법(FATCA)의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는 데도 미 정부가 세금을 부과, 시민권 포기마저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한국계 미국인도 연간 100여명
추산
21일 관련기관 등에 따르면 FATCA는 2010년 오바마 정부가 역외 탈세 근절을 위해 제정한 초강수 법안으로, 2014년 7월1일부터 개인 납세 의무자는 물론, 해외 금융기관도 5만달러 이상을 보유한 미국 납세자는 소유 해외 금융자산을 신고하도록 했다.
미국 정부는 FATCA 발효 이전 비슷한 제도인 해외 은행계좌 신고제(FBAR)를 1970년대부터 운영했으나 납세 의무자의 자진신고에 의존해 가중 처벌에도 실효성은 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납세 의무자가 신고하지 않더라도 외국 정부나 금융기관 협조 없이는 자금을 추적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FATCA 발효에 따라 2014년 7월부터는 5만달러 이상의 해외예금계좌 등을 미국 국세청(IRS)에 신고하지 않다가 적발되면 계좌잔고의 최대 50%까지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해외에 체류하는 미국 시민권자의 해외재산에 징세를 강화하자 시민권 포기가 매년 늘고 있는 것이다.
IRS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전세계 미국 시민권 포기자는 231명에 불과했으나 2010년 들어 1000명을 돌파한데 이어 2013년에는 3000명에 달했다. 2014년 3415명, 2015년 4279명, 2016년에는 5411명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미국 세금 관련 컨설팅 업체 모스택스컨설팅 관계자는 "매년 미국 시민권 포기자가 늘고 자진 신고자도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금 피하려니..美국적포기 수수료 2350달러
특히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서 '반(反) 이민 행정명령'을 비롯해 '원정출산' 등에 압박이 심해지자 해외체류 미국 시민권자 및 영주권자에 대한 역외 탈세 조사도 정밀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도 무거운 세금 또는 벌금을 피하기 위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실제 2015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미국 시민권을 가진 재벌 2세, 또는 3세 등 이른바 '독수리금수저'들의 시민권포기 추정 사례가 확인됐다.
본지가 IRS의 분기별 미 연방관보를 확인한 결과, 지난해 4·4분기(2016년 12월31일자)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 사람 가운데 한국계 추정 인물은 모 여대 A교수를 포함, 31명에 달했다. 지난해 3·4분기에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 한국계 추정 인물은 23명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추세라면 매년 100여명의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이중국적자인 B씨(28·여)는 "사실 강화된 미국 세금법을 알아보기 위해 세미나 등에 참석한 결과 준비하고 내야할 것이 많아 시민권을 포기할까 생각했다"며 "그러나 미국의 국적포기 수수료가 2350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데다 국적포기세가 추가된다고 해 고민중"이라고 털어놨다. 국적포기세는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시민권·영주권을 포기할 때 그가 가진 전 세계 재산을 모두 처분한 것으로 가정해 발생한 이익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모스택스컨설팅 관계자는 "미국에서 실제 거주하는 경우에만 미국 세법상 의무가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며 "벌금을 우려해 국적을 포기하기보다는 밀린 세금보고 및 계좌보고를 진행하는 쪽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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